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촬영의 길로 들어선 이형빈 촬영감독은 어느새 경력 20년차의 촬영감독이 됐다. 열악한 2000년대 초반의 독립영화계부터,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그의 역량은 올해 좋은 성적을 낸 <시민덕희>란 결과물로 종합됐다. 많은 대화와 전화 장면 등 정적인 화면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한시도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기 위한 이형빈 촬영감독의 갖가지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 2시간가량의 영화는 끊이지 않는 동적인 리듬으로 완성됐다.
원래는 영화 전공과 무관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관심이 있어 친구와 맨날 비디오만 엄청나게 빌려서 보다가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지원했다. 그런데 낙방했다. 바로 군대로 갔다. (웃음) 군대에 가서도 <씨네21>을 구독하면서 영화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했고, 전역 후에 부모님 몰래 복학을 하지 않고 등록금을 챙겨 한국독립영화협회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자연스럽게 촬영 현장에 투입되면서 동료들과 계속 영화를 찍고 이야기하는 나날을 보냈다. 언젠가부터 현장에서 얻는 것으론 부족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결국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 처음 촬영한 장편영화가 무엇이었나.장건재 감독의 첫 장편 <회오리바람>(2009)이었다. 영화와 광고 촬영 현장을 오가며 먹고살던 와중에 한국영화아카데미 선배이자 동료인 장건재 감독과 함께하게 됐다. 지금도 현장의 기억이 생생하다. 1회차의 첫컷이 태훈(서준영)이 여관 방에서 깁스한 팔을 만지작거리는 장면이었는데 핸드헬드로 카메라가 천천히 들어가는 숏이었다. 그런데 서른여섯인가 서른여덟 테이크를 찍었다. 그 컷만. 친구니까 대놓고 싸우진 않았지만, 속으론 ‘이래서 영화 완성이 되겠나’ 싶었던 기억이 있다. (웃음)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기세 좋고 재밌어하던 시절이었다.
- 본격적으로 충무로 상업영화에 진입한 시점은.<목숨 건 연애>(2016)라는 작품에 운 좋게 초대받아서 갑작스럽게 상업영화에 데뷔하게 됐다. 충무로 출신도 아니고 독립영화 위주로 작업하던 촬영감독에겐 흔치 않은 기회였다. 모두에게 그렇지만 그 선을 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게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상업영화에 입봉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 올해 <시민덕희>로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촬영 측면의 핵심 중 하나는 덕희(라미란)의 추적극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었을 것 같다.
맞다. <시민덕희>가 범죄수사물이긴 하지만 아주 과감한 추격 신이 이어지거나 격렬한 액션이 펼쳐지는 편은 아니다. 덕희와 동료들이 택시에 앉아 있거나, 덕희가 전화하거나 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자칫하면 이 좋은 시나리오를 관객이 지루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있었다.
- 그 때문인지 중간의 뉴스 푸티지 같은 특수한 장면을 제외하곤 대체로 핸드헬드 기법으로 화면이 계속 움직인다는 인상을 준다. 컷과 신의 리듬이 끊이지 않는다.
헨드헬드 컨셉이 명확히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바뀌는 경우가 잦았다. 상업영화이고 감독님의 첫 장편이다 보니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데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콘티에선 픽스로 가기로 한 장면도 직관적으로 카메라가 조금은 더 편안한 호흡으로 움직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땐 감독님과 적극적으로 상의했다. 촬영 초반에는 이런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았으나, 현장에서 진행하다 보니 그 편이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 소소한 장면일 수 있지만, 덕희가 칭다오 거리에서 수선집 직원으로 변장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돌리 숏으로 거리 전경을 먼저 찍은 뒤 덕희의 모습에 초점을 두는 부분이다. 3~5초의 짧은 컷이지만 이런 움직임이 모여 작품의 전반적인 속도감을 유지했다.
계획된, 아주 중요한 숏이다. 질문에서 언급했듯 컨티뉴이티 측면의 흥미로움도 있었고, 현실적 로케이션의 한계를 극복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 로케이션 길이 모두 막히면서 어쩔 수 없이 군산 구시가지에 세트를 지어 칭다오 거리를 촬영했다. 세트 양쪽을 크로마키로 막아놓고 VFX 후반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중국의 실제 모습을 촬영 소스로 찍어올 수도 없는 상황인 터라 불안감이 꽤 컸다. 그래서 최대한 VFX의 위험성을 줄이고 실제 세트를 활용하면서 효율적으로 프레이밍하는 방법이 돌리 숏이었다.
- 칭다오 거리가 세트란 사실이 결과물에선 거의 티 나지 않는다.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미술과 VFX가 잘 구현돼서 조금 더 과감하게 촬영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긴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예민할 정도로 보수적일 때가 있어야 촬영 계획의 안정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반작업에서 배경값으로 확보할 수 없는 데이터가 0인 상황이었기에 촬영감독의 의무를 지키는 일이 중요했다. 화면의 배경값이 무너지는 순간 관객이 영화를 가짜라고 인식하게 되고, 재밌는 영화가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 해외 로케이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국 장면과 칭다오 장면의 대조를 화면으로 구현하는 일도 중요했을 것 같다. 일례로 칭다오의 보이스피싱 콜센터 본부에선 더 극적이고 양식적인 앵글이 많아 보였다.
맞다. 덕희가 한국에 있을 땐 대체로 아이 레벨을 유지하고, 칭다오 본부의 재민(공명)은 더치 앵글이나 숏 사이즈 측면에서 더 과감한 클로즈업도 자주 사용했다. 한국, 중국의 분량을 렌즈로 완전히 분리했다. 한국 분량은 일반적인 마스터렌즈를, 중국 분량은 애너모픽렌즈를 써서 화면의 색감이나 질감을 분리하려했다.
- 중국 장면의 전반적인 조명 사용에서도 한국 장면과 차이가 있다.
미술감독, 조명감독님과 많은 논의를 거쳤다. 칭다오 콜센터 본부는 창문을 신문이나 갖가지 인쇄물로 막아 투과되는 약간의 빛으로 시간대를 표현하기로 했다. 내부 빛은 형광등 베이스의 블루시한 톤으로 배경을 잡고 곳곳에 앰버 톤의 조명등을 달아 조화롭게 설정해보려 했다. 감독님이 중시한 디자인 중 하나는 콜센터 본부 인근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춘화루’ 간판이 붉은색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민이 극적인 상황을 맞이했을 때 그 간판의 붉은빛이 얼굴에 드리우게 하는 조명디자인이 핵심이었다.
- <시민덕희>를 비롯해 <부라더> <시동> 등 코미디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를 자주 촬영했다. 코미디영화를 잘 찍는 노하우가 있다면.
진짜 어렵다. 코미디가 가장 어렵다. (웃음) 웃음이라는 건 철저하게 감독이 사전에 계획한 편집, 음악 측면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상당 부분 기대야 한다. 그러니 카메라가 어떤 계획된 기교로 준비하기보단 현장의 즉각적 애드리브나 호흡을 포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 차기작으론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가.<갈매기>를 만든 김미조 감독님의 신작 <경주기행> 촬영을 8월쯤에 마쳤다. 후반작업을 준비 중이다. 한편으론 한국 영화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돼 걱정이 많다. 또 현장에 오래 있다 보니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같은 산업 환경의 변화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최근 들어 촬영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지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촬영하는 사람 입장에선 효율성이 제고되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연출자나 연기자들에겐 확실히 더 부담을 준다는 느낌이 들긴 한다. 근래 촬영 현장에선 이런 측면을 잘 해석하고 계획하는 사전 단계가 더욱더 중요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