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밥 딜런의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알고보면 더욱 재미있는 <컴플리트 언노운> 속 실제 인물들
2025-02-21
글 : 정재현

<컴플리트 언노운>엔 밥 딜런만큼이나 20세기 중반 미국 대중음악사에 가지각색의 족적을 남긴 뮤지션들이 물밀듯 등장한다. 아마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다수는 밥 딜런의 음악을 포함해 영화에 등장한 수많은 포크 명곡을 검색 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할 것이다. 영화가 미처 설명하지 않은 ‘밥 딜런의 친구들’을 소개한다. 관람 전후 읽어두면 더욱 흥미롭게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존 바에즈로 분한 모니카 바바로, 실비 루소로 출연한 엘 패닝과 <씨네21>이 나눈 인터뷰도 함께 싣는다.

밥 딜런의 영원한 우상, 우디 거스리

영화 속 밥 딜런(티모테 샬라메)은 자신의 우상 우디 거스리(스쿠트 맥네리)를 만나기 위해 미네소타에서 뉴욕으로 향한다. 우디 거스리는 미국 민중가요의 태두다. 1931년 거스리는 자연재해와 가족의 잇단 사망으로 인해 한곳에 정착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시기 미국 전역을 떠돌며 지역별 민요를 채집했다. 이는 전통(folk)에 기반을 둔 거스리 고유의 음악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다. 1940년 거스리는 마침내 미국 동부에 정착, 노동자를 위한 음악을 본격적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다수의 반파시즘 음악을 내놓았다. 포크가 촉발하는 사회변혁의 선봉에 선 것이다. 하지만 포크의 최전성기에 유전성 신경계 퇴행 질환인 헌팅턴병이 발병했고 이후 긴 와병을 이어갔다. 설상가상으로 거스리는 투병 중 매카시즘의 광풍까지 겪으며 쇠약해졌고, 1967년 뉴욕의 한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밥 딜런은 자작곡이 인기를 얻기 전까지 우디 거스리의 노래를 커버하는 데 열중했다. 이를 딜런의 연인이었던 수지 로톨로가 <노 디렉션 홈: 밥 딜런>에서 증언한다. “그 당시 밥은 온 마음을 우디에게 쏟았다. 우디의 음악에 동화되고자 했고, 우디의 궤적을 모방하고자 했다.”

밥 딜런의 좋은 선배, 피트 시거

우디 거스리가 떠난 포크계의 큰 형님 자리는 자연히 피트 시거가 이어받았다. 에드워드 노턴이 연기한 피트 시거는 거스리와 함께 모던 포크의 초석을 다진 미국 대중음악의 전설이다. 시거는 싱어송라이터인 동시에 걸출한 밴조 연주가였고 저명한 사회운동가였다. 시거는 법정에서 자신의 신념이 국가에 위배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며 영화에 처음 등장한다. 여기에 생략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미국 하원의 반미활동 조사위원회에서 공산주의자 증언과 동료 고발을 거부했다. 이후 시거는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1962년까지 방송 출연을 정지당하는 등 고초를 겪지만 굴하지 않고 전범국, 노조 탄압, 인종차별을 향해 음악으로 목소리를 드높였다. 영화의 중요 무대이자 현대 음악 페스티벌의 효시로 알려진 뉴포트포크페스티벌 역시 피트 시거에 의해 만들어졌다. 밥 딜런과 피트 시거는 1975년 뉴포트포크페스티벌 이후 다른 길을 걷는다. 하지만 두 예술가는 시거의 사망 전까지도 필요 시 합동무대를 꾸미는 등 꾸준히 협업하며 각자의 음악 세계를 존중했고 서로의 행보를 비난하지 않았다.

밥 딜런과 따로 또 같이, 존 바에즈

한때 밥 딜런의 연인이었고, 평생 밥 딜런의 친구였다. 그러나 이 한줄로 존 바에즈를 요약하기엔 바에즈 역시 딜런 못지않은 포크의 전설이다. 1954년 바에즈는 피트 시거의 라이브 콘서트를 감상한 후 두 가지의 목표를 세운다. 나도 음악을 하리라. 그리고 나도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리라. 그는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루었다. 1959년 뉴욕에서 데뷔한 후 그해 제1회 뉴포트포크페스티벌을 통해 단숨에 스타가 됐다. 바에즈의 히트곡은 대한민국에서도 사랑받았다. <The River in the Pines>는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라는 제목으로 1970년대 국내 가수들에 의해 자주 번안돼 불렸고, 바에즈가 데뷔앨범에 수록해 인기를 모은 스코틀랜드의 민요 <Mary Hamilton>은 가수 양희은이 <아름다운 것들>로 리메이크해 지금까지 양희은의 대표 레퍼토리로 가창된다. 바에즈의 사회운동 이력 또한 굵직하다. 음악이 신념 전달 도구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던 밥 딜런과 달리 바에즈는 우디 거스리, 피트 시거와 같은 선배들처럼 음악과 사회운동을 통해 세계의 모순에 저항해야 한다고 믿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벌이고 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몰자 바에즈는 징집 반대 데모에 수차례 참여했다. 전쟁을 반대하는 의사 표시로 국방비 납세를 거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주도했고, 밥 딜런과 함께 전쟁 중인 베트남으로 가 13일간 위문공연을 펼쳤다. 바에즈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80년대엔 폴란드 자유연대노조의 비폭력시위를 이끈 레흐 바웬사가 계엄령 위반을 이유로 가택연금되자 그를 직접 만나러 갔고, 부시 정권과 트럼프 정권을 비판하는 노래를 발표했다. 딜런은 바에즈와의 첫 만남, 연애 그리고 우정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충격적인 존재였다. 존은 나의 세계를 다른 각도에서 강타했으니까. 무엇보다 그는 뛰어난 기타리스트였다.”

밥 딜런의 동지들

실비 루소(엘 패닝)는 모티브가 분명한 허구화된 캐릭터다. 밥 딜런은 제임스 맨골드 감독에게 자신의 옛 연인이자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의 커버에 함께 등장했던 수지 로톨로만은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픽션 캐릭터로 그리길 요구했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작중 뮤지션들과 달리 수지 로톨로는 대중 앞에 노출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톨로는 영화에 묘사된 대로 시민권 투쟁 단체인 CORE의 열혈 단원이었다. 그는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핵무기 반대 청원서를 배부하다가 정학당했을 정도로 사회 불의에 저항하는 청춘이었다. 영화와 다른 점 한 가지. 영화 속 딜런은 루소에게 “피카소는 따분해”라며 피카소 그림을 보러 가길 거부했다. 하지만 로톨로의 자서전 <A Freewheelin’ Time>에 따르면 두 사람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관람했다. 로톨로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나처럼 예술을 오랫동안 감상할 줄 아는 남자와 함께라서 좋았다.”

한편 밥 딜런의 음악 동지들은 영화가 그린 그대로다. <노 디렉션 홈: 밥 딜런>에 직접 출연한 기타리스트 알 쿠퍼는 프로듀서의 초대로 녹음 스튜디오에 갔지만 기타 신성인 마이크 블룸필드가 이미 세션으로 있는 걸 보고 낙담했다고 전했다. “기타리스트인 주제에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오르간 앞에서 코드를 반주했다. 그런데 밥이 나를 내쫓지 않았다. 그리고 콘솔 앞에 앉은 프로듀서를 향해 주문했다. ‘오르간 볼륨 더 키워.’” 그렇게 쿠퍼는 《Highway 61 Revisited》의 정식 세션이 됐다.

순간에 그대로 존재하기, <컴플리트 언노운> 배우 모니카 바바로

“먼저 기타와 노래를 배웠다. 마치 오랫동안 음악을 해왔던 사람으로 보일 만큼 실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컴플리트 언노운> 속 연기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모니카 바바로는 존 바에즈가 되기 위해 5개월에 걸쳐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았다. “흉내낼 수 없는 존의 독보적인 스타일의 목소리”를 연마하는 것은 물론 “존이 노래하는 키에 맞추어 음역대를 넓히고 특유의 핑거피킹 스타일을 익혔다”. 바에즈와 닮아가는 노력이 “인물의 개성을 살릴 방법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바바로는 영화가 요구하는 속도로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이걸 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실감하며 감정이 북받쳤다. 하지만 ‘이젠 정말 존 바에즈처럼 할 수 있어’라고 확신한 순간은 많지 않았다.”

촬영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 모니카 바바로는 존 바에즈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존과 통화를 했다. 존은 나를 가르치는 식으로 조언하지 않았다. 그가 쓴 회고록이나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텍스트와 영상에선 얻을 수 없는 디테일을 질문했고, 존과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바에즈와의 대화를 통해 바바로가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 “결국 나는 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 중요한 것은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흉내를 내는 게 아니다. 그 순간에 그대로 존재하면 결국 살아 있는 인물을 구현할 수 있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진실을 찾다, 순간에 집중하다, <컴플리트 언노운> 배우 엘 패닝

밥 딜런과 존 바에즈에 비해 스포트라이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인물, 실비 루소. 하지만 엘 패닝은 루소가 “가장 평범하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며 그를 ”단순히 밥 딜런의 연인이 아니라 한명의 예술가”라고 정의했다. “배역을 준비할 땐 언제나 캐릭터의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는 패닝은 막상 촬영이 시작되면 “눈앞에서 펼쳐지는 순간에 집중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침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은 딜런과 루소가 펜스를 사이에 두고 이별하는 순간이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대본과 달리 새로 추가한 장면이고, 패닝은 이 순간이 씁쓸하고 필연적인 이별의 은유가 된 것에 만족을 표했다.

엘 패닝은 “유명세를 원하지 않았던 수지 로톨로처럼 실비 루소의 연약한 모습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표정과 반응으로 많은 것을 전달”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연인이자 소중한 친구로서 밥 딜런을 바라보는 리액션숏을 어떻게 만들어갈지가 가장 큰 숙제였는데 현장에서 감독과 동료 배우들이 패닝을 위해 여러 번 실제 공연처럼 연기해주었다고. 연인인 밥 딜런을 연기한 티모테 샬라메와는 <컴플리트 언노운>이 두 번째 만남이다. “티모테가 지금처럼 대배우가 되기 전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는 점이, 실비가 밥을 유명해지기 전부터 알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친밀한 관계가 연기에 도움이 됐다. (웃음)” <컴플리트 언노운>은 한 예술가가 진화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는 두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엘 패닝에게도 가깝고 친밀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밥 딜런의 삶에서 그토록 많은 예술적 선택을 내리는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그를 한 가지 틀에 가두려 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든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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