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을 정의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비디오 가게에서 그가 어떤 칸에 들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리만큼 특정 칸에 들어가는 걸 거부해왔다.” 인디영화, 서부극을 재해석한 누아르물, 로맨스 판타지, 음악 전기영화, 레이싱영화, 히어로물 등 제임스 맨골드의 필모그래피는 유독 다채롭게 구성돼 있다. 때문에 그의 의도대로 제임스 맨골드를 한 장르나 사조 속에서 설명하긴 쉽지 않다. 다만 <컴플리트 언노운> <앙코르> <포드 V 페라리>와 같이 실제 인물·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모수를 좁힌다면 몇 가지 교집합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에 관한 감독의 해석이 명확하게 드러나며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순간을 최대한 후반부로 유예한다는 것. 이는 때때로 그의 다른 극영화에서도 드러나는 연출적 특성이자 영화 매체를 바라보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전기영화를 제작할 때 “역사적 재현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제임스 맨골드는 개별 캐릭터의 전체 인생을 훑는 대신 한 챕터를 건져 올리는 방식을 택한다. <앙코르>는 가수 조니 캐시(호아킨 피닉스)가 형의 죽음이란 트라우마를 안게 되는 유년 시절부터 데뷔 이후 축적된 반항심을 노래하면서도 마약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는 20여년의 세월에 주목한다. <포드 V 페라리>는 1966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출전하기 위해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와 자동차 디자이너 캐럴 셀비(맷 데이먼)가 수개월간 거친 실험과 주행이 담겼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 무명의 신인 가수이던 시절부터 스타덤에 오른 1961~65년을 주목한다.
실존 인물의 특정 요소, 특정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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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가 특정된 만큼 묘사된 인물들의 특성도 보다 간결해진다. 조니 캐시는 ‘자기혐오와 반항’, 켄 마일스는 ‘도전’, 그리고 밥 딜런은 ‘자유’라는 키워드로 정의내릴 수 있을 정도다. 밥 딜런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그는 “아름답든 추하든 평범한 건 안돼. 주목받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세간의 관심이 모이자 이를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정확히는 대중이 각자의 이상향을 투영하거나 정형화된 스타로서 자신을 규정지으려는 시도에 거부감을 보인다. 쫓아오는 팬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택시에 올라 사라지고, 힐끔대는 비행기 옆 좌석을 피해 “대중적 유명성이라는 법칙이 나를 산산조각 냈다”고 조니 캐시에게 편지를 쓰던 밥 딜런의 음울한 옆얼굴이 그의 심정을 대면한다.
실존 인물의 특정 요소, 시기에 집중한다는 점은 공통되지만 제임스 맨골드는 영화의 시점에 있어선 차이를 둔다. <앙코르>가 조니 캐시의 시점, <포드 V 페라리>가 전지적 시점에서 캐릭터들의 여정을 그린다면 <컴플리트 언노운>은 주변인들의 시선을 경유해 밥 딜런의 자유로운 성정을 표현한다. <컴플리트 언노운>에는 유독 밥 딜런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 바라보는 주체는 밥 딜런의 애인들이다. 정사를 나눈 방, 무대 아래, 파티장 밖 길거리에서 그들은 밥 딜런의 뒷모습을 좇는 객체로서 자리한다. 이때의 밥 딜런은 연인이 아닌 스크린 속의 뮤지션과 다름없다. 반면 밥 딜런의 시선 속엔 타인이 부재하다는 인상이다. 그는 어디에서든 오직 음악, 새롭게 쓰일 곡에 온 신경을 쏟는다. 이러한 대비는 영화의 말미를 장식하는 1965년의 뉴포트포크페스티벌에서 극에 달한다. 밥 딜런은 포크송을 기다리는 관중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한 채 밴드 세션과 록을 열창한다. 동료 가수인 존(모니카 바바로)은 “우리 모두에게서 자유를 쟁취한 것에 만족하냐”고 묻지만 밥 딜런은 그저 유유히 콘서트장 밖으로 사라질 뿐이다.
대상을 <앙코르>와 <컴플리트 언노운>으로 좁혀본다면 다른 뮤지션들의 전기영화와의 차이점도 논해볼 수 있다. 제임스 맨골드는 음악영화임에도 음악을 그리 중요한 요소로 바라보지 않는다. 가령 <앙코르>에선 조니 캐시의 음악보다 그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자기 삶의 구원자인 준을 갈구하는 모습이 더 주의 깊게 그려진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앙코르>보다 음악과 무대가 주요하게 구성되어 있긴 하나, 엄밀히 말하면 음악의 ‘가사’가 밥 딜런의 심정을 대변하며 1960년대 인권운동을 비롯한 변혁의 움직임이 활발하던 시대상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임스 맨골드가 음악은 “영화 텍스트의 일부”이며 “대사와 다를 게 없다”고 언급한 것과 상통한다. 요컨대 음악영화라 할지라도 제임스 맨골드는 무대가 아닌 인물의 감정, 심정의 변화가 우선이며 노래가 흐르는 와중에도 “캐릭터 디벨롭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창작자이다. 제임스 맨골드는 고전을 레퍼런스 삼아 끊임없이 연구하지만, 자신의 영화를 연출할 땐 반드시 새로운 시도를 강구한다고 여러 매체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캐릭터의 감정을 우선한다는 기조 외에는 인물의 특성에 따라 시대, 배경, 시점 등에 자유로운 변주를 꾀하는 것이 그의 특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긴 호흡으로
제임스 맨골드의 영화에 관해 빈번하게 언급되는 평 중 하나는 호흡이 길다는 것이다. 이는 긴 러닝타임으로 대변되는 특징일 수 있지만 극의 결정적인 순간들, 가령 인물들이 진실을 깨닫거나(<아이덴티티>), 마침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로건>), 방황 끝에 자신의 방향성을 확정하는 순간(<컴플리트 언노운>)이 극의 말미에 위치하는 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특성은 제임스 맨골드가 각본가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연출자라는 사실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컬럼비아대 재학 시절 제임스 맨골드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연출 마스터클래스를 수강했다. 당시에도 그는 플롯보다 감정에 초점을 맞춘 집필 방식이 편했다고 회고한다. 시나리오에 관한 밀로스 포먼의 피드백 중 제임스 맨골드에게 영감을 준 것은 “‘42페이지, 그의 엄마가 죽었지만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이게 영화가 말하려는 바군. 이 순간을, 이 (주인공의) 거짓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간직하게”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는 그의 두 번째 장편 <헤비>로 완성되었다.
타인과 친밀한 관개를 맺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요구된다. 이 법칙은 때론 작품 속 캐릭터와 관객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2시간 가까이 고민하고 방황하고 노력해온 인물이 실패 혹은 성공의 고지에 도달했을 때 덩달아 감흥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런 면에서 제임스 맨골드는 인물이 천천히 쌓아올린 고지 위로 관객을 초대해 주인공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특화된 창작자다. 그의 영화의 고지들. <캅 랜드>에서 프레디가 마침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포드 V 페라리>에서 켄이 우승을 눈앞에 두고 천천히 속도를 늦추길 택했으며,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밥 딜런이 원하는 세트 리스트를 설정하는 순간들에는 제임스 맨골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만 남겨져” 있다. 현재의 제임스 맨골드를 이루는 연출적 특징들은 어쩌면 밀로스 포먼의 마스터클래스를 기점으로 형성되고 강화되어온 것이 아닐까.아카데미 레이스를 눈앞에 둔 <컴플리트 언노운> 이후, 제임스 맨골드는 DC 코믹스의 <스웜프 싱>과 새 <스타워즈> 시리즈를 연출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신작들에선 제임스 맨골드가 또 무엇을 유지하고 바꿔나갈까. 그의 또 다른 도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