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개점한 2011년 중화권 영화계의 키워드는 바로 ‘거장의 귀환’과 ‘무협’이다. 앞서 소개한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를 비롯해 서극, 허우샤오시엔, 진가신, 지아장커 감독이 무협 블록버스터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촬영을 시작하지 않아 2011년 개봉이 불확실한 작품들도 있지만, 이 거대한 이름들이 동시에 대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중국영화계의 엄청난 활력이 느껴진다.
서극 감독은 <신용문객잔>의 3D 리메이크작인 <용문비갑>을 준비하고 있다. 1992년 양가휘, 임청하, 장만옥 등 당대의 특급 스타들이 총출동한 <신용문객잔>을 제작했던 서극은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모양이다. 캐릭터와 줄거리 모두 대폭 수정할 거라 알려졌으나, 중심인물과 플롯은 원작과 같다. 명나라 장수 주유안이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려는 환관 인내시의 군대와 용문 여관에서 대적한다. 주유안은 환관 세력에 맞서기 위해 여관의 매혹적인 안주인 연옥을 이용하려 한다. 서극 감독이 선택한 새로운 객잔의 영웅은 이연걸이다. 이연걸이 서극 감독의 <황비홍> 시리즈로 중국영화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점을 생각하면 18년 만에 한 영화에서 조우한 두 사람의 만남은 더욱 의미가 깊다. 여관 안주인으로는 현재 중국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배우 저우쉰이 출연한다. <용문비갑>은 2011년 크리스마스 개봉예정이다.
진가신이 리메이크한 <독비도>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첫 무협영화로 당나라 여협객의 이야기를 다룬 <섭은낭>을 촬영하고 있다. 섭은낭은 당나라 시대 전기소설 작가 배형의 작품에 출연하는 여호걸이다. 소설에서 그녀는 부유한 가문의 딸이었으나 비구니에게 납치되어 암살자가 되었고, 암살 임무를 수행하려다가 표적자의 도량에 반해 주인을 바꾸어 섬기다 세상을 떠난 곡절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허우샤오시엔의 <섭은낭>이 소설의 결을 따를지는 미지수다. 이미 그는 “무협 블록버스터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같은 스타일”이 될지 모른다는 말로 궁금증을 더했으며,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영화의 배경은 일본”이라며 폭탄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흐릿한 밑그림조차 그리도록 허용하지 않는 그의 알쏭달쏭한 발언에 따르면, 아무래도 <섭은낭>의 실체는 허우샤오시엔이 개봉을 희망하는 올 연말쯤에 직접 확인해야 할 듯하다. 섭은낭은 <쓰리 타임즈>와 <밀레니엄 맘보>의 그녀, 서기가 맡아 연기한다.
<첨밀밀> <퍼햅스 러브> 등의 멜로영화로 유명한 진가신 감독은 장철 감독의 대표작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독비도)를 리메이크한 <무협>으로 대륙을 공략한다. 그는 지난 2007년 장철 감독이 연출한 <자마>의 리메이크작 <명장>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바 있다. 진가신 감독의 리메이크작은 원작보다 “더 잔혹하고, 더 많은 피로 얼룩진”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 한다. 한쪽 팔을 잃고 작은 마을로 잠적한 외팔이 검객은 견자단이, 상처 입은 그를 보살피다 부부가 되는 마을 여인은 탕웨이가 맡아 연기하며, 금성무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배후로 외팔이 검객을 의심하는 수사관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반가운 이름은 ‘영원한 외팔이 검객’ 왕우다. 장철 감독의 오리지널 영화에서 외팔이 검객을 열연해 중국 무협영화 역사에 한획을 그은 왕우에게 <무협>은 10여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그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무협>은 2011년 개봉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완전히 다른 지아장커의 첫 상업영화
지아장커의 첫 상업영화로 화제가 되고 있는 <재청조> 역시 이르면 올 연말 개봉한다. 1905년을 기점으로 대변혁을 맞은 청나라 말기, 황족과 더불어 무술이란 오래된 문명이 바스러져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두기봉 감독이 제작을 맡아 3월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인 <재청조>는 “액션장면과 풍자적인 유머를 많이 넣을 것”이라는 지아장커의 말에 의하면 <스틸 라이프> <24시티>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영화가 될 듯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 단어가 ‘문명의 부서진 조각’과 ‘쓸쓸하고 가난한 땅’이라는 각본가 한동의 힌트는 지아장커의 관심이 여전히 사라져가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