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등 잇단 누벨바그 감독들의 비보와는 반대로, 알랭 레네는 17번째 장편영화 <잡초>(2009)로 노장의 힘을 마음껏 발휘했다. 아흔살에 가까운 그는 <잡초>를 소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10년부터 다시 신작 <당신들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에 착수했고, 온갖 언론과 평단의 환호성을 들었다. 2011년 초 현재, 레네는 언론에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면서 아주 비밀스럽게 후반작업을 마무리하며 프랑스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개봉일은 미정이다.
유리디스와 오르페의 사랑과 질투
프랑스 언론에 공개된 제한된 정보에 따르자면, 캐스팅상의 큰 이변은 없어 보인다. 그의 단골 배우 사빈 아제마, 피에르 아르디티가 여전히 출연하고, <잡초>로 레네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된 마티외 아말릭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알랭 레네는 홀로 시나리오 쓰기를 워낙 싫어해 그간 마그리트 뒤라스, 알랑 로브 그리에 등 유명 작가와 호흡을 맞춰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사실 그는 단 한번도 혼자서 시나리오를 집필한 적이 없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입술은 안돼요>(2003), <마음>(2006), 그리고 <잡초>를 함께 집필한 로랑 에비에가 이번에도 레네와 손을 잡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안티공> <메데스> 등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비롯해 여러 희곡을 쓴 프랑스의 유명 극작가 장 아누이의 1942년작 <유리디스>(Eurydice)를 자유롭게(!) 개작했다고 알려졌다. 장 아누이의 원작은 비극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알랑 레네는 원작에 얽매이지 않은 창의적인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확한 줄거리는커녕, 작품의 톤 조차- 코미디물인지 비극인지- 현재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하지만 레네쪽은 희곡의 주인공인 여배우 ‘유리디스’와 바이올리니스트 ‘오르페’간의 격한 사랑과 질투를 주로 다루는 점은 틀림없다고 말한다.
시각과 청각의 생체적 연관관계
배우(이미지를 파는 사람)와 음악가(소리를 파는 사람)의 애증의 관계, 즉 시각적으로 보이는 형태와 이를 연결하는 청각적 리듬감에 대한 애증의 관계는 레네가 ‘고전적인 서사’의 전달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던 요소임과 동시에, 그를 누벨바그의 기수로 만든 요소다. 사실 그는 초기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시절부터 당시의 프로파간다적인 다큐멘터리의 고전서사(말하자면, 딱딱한 정보 전달의 코멘터리)와 차별화한 리드미컬하고 시적인 코멘터리의 <밤과 안개>(1955), <세계의 모든 기억>(1956), <스티렌의 노래>(1957)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첫 장편 <히로시마 내 사랑>(1959)과 초기 장편들의 획기적인 실험성은 차치하더라도, 이후 그는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음악적인 요소를 자신의 작품에 깊숙이 연관지었다. 몇개의 예를 들자면 <삶은 소설이다>(1983)에서는 오페라를, <입술은 안돼요>에서는 오페레타를, 그리고 <우리는 그 노래를 알았다>(1997)에서는 대중음악을 다루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두 감각, 두 장르간의 생체적인 연관관계가 알랭 레네 영화들의 중요한 모티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그의 필모그래피를 고려해볼 때 <당신들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두 장르간의 만남을 그리스 신화의 잘 알려진 두 인물 사이의 숙명적, 치명적인 사랑과 질투의 관계로 환원시켜 상징적으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직접적으로(말하자면 두 인간의 육체를 통해) 보여줄 것이라고 미리 점쳐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반세기가 넘는 작품 활동 끝에 18편의 장편 외에도 다수의 단편을 남긴 알랭 레네는 지금 89살의 나이로 <당신들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를 마무리 중이다. 그간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면, 알랭 레네는 그의 19번째 장편에서 대체 무엇을 우리에게 더 보여주고 들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