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재벌 총수 헨리크 반예르(크리스토퍼 플러머)는 40여년 전 손녀 하리에트가 실종된 이후 한시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그는 좌파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대니얼 크레이그)를 고용하여 자신의 자서전을 쓰도록 지시한다. 미카엘이 벼르고 있던 부패한 사업가 베네르스트룀의 범죄 여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넘겨주겠다는 조건이다. 내키지 않게 제안을 받아들인 미카엘은 가족 중심 기업(그야말로 ‘재벌’) 반예르 그룹의 어두운 핵심으로 파고든다. 하리에트 실종 사건은 1966년에 벌어졌지만 실상 비밀은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더 복잡하고 끔찍한 진실의 파편 속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해커 리스베트(루니 마라)가 미카엘을 돕기 시작한다.
아이폰 시대에 맞는 시대 분위기
데이비드 핀처가 스티그 라르손의 슈퍼 베스트셀러 <밀레니엄> 시리즈(국내 출간제목은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부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3부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에 미다스의 손을 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였다. 그는 <쎄븐>과 <조디악>으로 각기 다른 연쇄살인범의 초상을 통해 당대 미국의 무의식을 건드려온 장본인이 아니던가. 하지만 정작 데이비드 핀처는 <용 문신을 한 소녀>(시리즈 중 1부의 원제다) 연출을 맡기까지 상당한 고민이 뒤따랐다고 털어놓았다. 얼마 전 웹진 ‘collider’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처음 제안받았을 때 나는 즉각적으로 ‘세상에나, 또다시 연쇄살인범 영화를 만들 순 없어. 이젠 정말 그만 만들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선 ‘어른용 프랜차이즈물을 만들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설득했고, 그건 바로 내가 지금까지 20여년을 일해오면서 막연하게 꿈꿨던 기회였다”라고 설명했다. 핀처는 이 드문 기회를 장고 끝에 받아들였다. “원작은 2005년에 처음 발간되었고, 지금 우리는 아이폰 시대에 살고 있다. 그전까지 맥을 사용하지 않은 유저들이라도 아이폰을 통해 여주인공 리스베트가 타인의 내밀한 컴퓨터에 침입하는 과정을 현실감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리스베트는 일종의 맥 ‘덕후’가 아닌가. 우리 영화에서 아이폰 성향 테크놀로지의 분위기를 내는 게 매우 리얼해졌다.”
시리즈의 핵심인물을 맡은 루니 마라
현재 스웨덴에서 촬영 중인 <용 문신을 한 소녀>에는 새로운 배우들이 속속들이 합류했다. 반예르 그룹의 회장이자 하리에트의 오빠 마르틴 역에 스텔란 스카스가드, 미카엘의 연인이자 잡지 <밀레니엄> 발행자 에리카 역에 로빈 라이트(더이상 로빈 라이트 ‘펜’이 아니다) 등이 등장하며 궁금증은 증폭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사실. 어쩌면 데이비드 핀처의 <용 문신을 한 소녀>는 맷 리브스의 <렛미인>과 마찬가지 카테고리 내에서 더없이 큰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스웨덴에서 시작하여 전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열광을 불러일으킨 원작 소설, 그리고 스웨덴에서 만든 영화, 그리고 그 열광이 채 가시기도 전 할리우드에서 새롭게 재창조한 버전 사이에서 끝없는 악담과 의혹과 팬덤 사이에서 상당한 비판 내지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명장 대열에 올라선 지 오래인 데이비드 핀처는 어떤 식으로 새로운 연쇄살인범의 초상을 창조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밀레니엄> 시리즈의 핵심인 리스베트 역을 나꿔챈 루니 마라는 과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처럼 21세기의 히로인으로 떠오를 것인가, 아니면 <연인>의 제인 마치처럼 전작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될 것인가. 결과를 알기 위해선 2011년 12월까지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