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독립영화’가 뭔가요? - 김진유 감독, 장우진 감독,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정지혜 평론가 4인 대담 ❷
2024-12-13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독립영화’가 뭔가요?

정지혜

- 씨네21 - 과거에 독립영화는 하나의 운동이었고 진영이었다. 지금은 각자의 산재되고 와해된 창작이 중심이다. ‘독립’영화라는 개념이 현재 어떤 형태로 유효하다고 보나. 독립영화를 한다거나 독립영화인이라는 자의식을 오늘 참석한 분들은 스스로 가지고 계신지도 궁금하다.

장우진 내게 그런 자의식은 없다. 장르영화를 하냐 아니냐의 문제다. 만약 내 경우를 묻는다면 나는 장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고 아직 기회를 못잡았을 뿐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럼 만약 내가 장르영화를 하게 되면 그 다음엔 ‘독립영화’를 안 하냐, 그것도 아니다. 그런 넘나듦 자체가 자유로운 게 건강한 시장일 테다. 미국으로 치면 배우 나탈리 포트만, 줄리안 무어와 <메이 디셈버> 같은 영화를 찍는 토드 헤인즈도 이를테면 인디펜던트 필름메이커 아닌가?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으로서 이 질문에 부정하기는 어렵다. (웃음) 독립영화인으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은 내게 중요한 희망이다. 다만 창작자로서 경계를 짓고 싶지는 않다. 처음부터 ‘나는 10억 미만의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일을 시작하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에 걸맞은 형식과 규모가 있을 뿐이다.

김진유 어렸을 때는 독립영화인과 그냥 영화인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하면 웃으며 넘어갔다. 창작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내 꿈이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게 창작자로서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독립영화인이라는 정체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금의 환경 안에서 작업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특히 출발선에 선 작가, 감독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적인 안전장치와 이를 위한 개념이 더 논의되고 생성될 수 있지 않을까. 예를들면 지역영화라는 단어도 - 영진위가 만들었다가 지금은 없애긴 했지만 - 하나의 인식을 만들었다. 몇년간 정책과 환경이 조성되면서 자신을 지역영화인이라 인식하는 이들의 어떤 흐름이 생긴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생태계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영화를 더 지속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지혜 비평가들 역시도 독립영화에 대해 말하고 쓰고, 기획자나 프로그래머 등 특정한 역할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비평하고 원고를 쓰는 노동자에 대한 지원은 없다. 독립영화의 근거리에 머무는 비평에 대해서도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직업 자체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아예 그러한 논의 자체가 없지 않나. 이런 자리가 있다면 한번쯤 말을 남겨두고 싶었다.

- 씨네21 - 그렇다면 대중의 인식은 어떠하다고 보나. 오늘날 한국영화를 생각할 때 독립영화는 관객에게 어떤 개념으로 다다가고 있을까.

장우진 내가 체감하는 대중의 반응이란 ‘존재하기는 한데 잘 안 알려진 영화’에 가까운 것 같다.

백재호 상업영화의 전단계? 그래서 말하자면 낮은 등급의 영화라는 어떤 인식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진유 비슷하게 느낀다. 독립영화는 어떠한 조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 이 형식을 시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들이다. 한국 독립영화가 지원을 못 받아서, 투자를 안 해줘서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처럼 받아들여질까봐 우려스럽다.

정지혜 한국영화 산업 안에서는 상업과 독립을 분류하는 선이 굵었던 게 사실이다. 어떤 제작 지원을 받았는가, 자본의 어떤 출처가 무엇인가, 어떤 인적 구성인가, 어디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가, 만드는 방식과 결과물이 어떠한가 등을 보았을 때 충독립 영화와 상업 영화, 혹은 대중 영화라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고 감각된다. 물론 오늘날 저예산 상업영화 같은 결을 지닌 작품이 많이 나오면서 독립영화만의 의미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런 케이스에 포함되지 않는 극단적이고 용감한 작품들도 많다. 이런 양극화를 생각하면 어떤 면에서는 경계가 더 선명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씨네21 -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의 흥행 고지가 관객수 2,3만명대로 형성돼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처럼 외화 아트하우스 영화는 10만을 거뜬히 넘기는 상황도 연출되는데. ‘한국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구분해서 바라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지혜 2만 관객 어떻게 만들어지는걸까 생각해보면… 일단 평론가로서 나부터가 영화제로 거의 관객을 만나기 때문에 실상 개봉관에 오는 관객을 잘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영화제에서 가장 먼저 작품을 보고 지지하는 관객층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그런 분들의 N차 관람을 포함한 어떤 최대치를 뽑아낸 숫자가 지금의 2만, 3만 관객이라는 파이인 걸까? 한 영화제 스태프가 관객 트렌드를 이야기하면서 “이 영화는 예술영화라고 생각해서 보시는 것 같고, 이 영화는 독립영화라고 생각해서 안 보는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 아트시네마 입장에서는 장사 안된다고 하지만 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다. 재개봉하는 명작들, 고전들 경우 젊은층 반응도 좋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의 격차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격차만큼 커지고 있는 건 아닐까. 달리 말하면 독립신 안에서도 이건 좀 예술영화고 저건 독립영화고 하는 구분이 어떻게 생기고 있는건가 싶다.

장우진 관객들은 냉정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보기 쉽지 않은 영화다. 흔히 대중과 접점이 있어서 잘됐다고 볼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아닌데 흥행했다. 시네마틱하고 실험적인 영화지만, SNS 입소문 등 정보력에 빠르고 동시에 가성비에 민감한 요즘 관객이 영화를 딱 한편만 봐야 한다고 할 때 기꺼이 고르고 싶은 영화라는 것이다. DVD프라임 온라인 커뮤니티를 지켜보고 있으면 그곳에 올라오는 반응을 통해 어떤 영화가 최소 1만은 넘기겠다, 혹은 터지겠다 하는 느낌이 온다.

백재호 플랫폼 부재의 문제도 있다고 본다. 예술영화 위주의 커뮤니티나 별점 플랫폼 등은 있지만 독립영화에 대해 논하는, 일종의 ‘붐업’을 일으킬 수 있는 장이 없다. 우리가 서로 한국 독립영화를 보고 교류하고 있다는 느낌, 정보를 하고 때로 논쟁을 나눌 수 있다는 결속감을 주는 커뮤니티가 없는 것이다.

김진유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포털 사이트 검색시에 정보가 잘 나오지 않는 점에도 크게 영향받는다.

백재호 인디스페이스만해도 더이상 네이버에서 검색이 되지 않아서 운영이 전보다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서울독립영화제가 지켜낸 50년 그 이후는

백재호

- 씨네21 - 내년 서독제 예산이 0원으로 삭감되었다가 1만명 넘는 영화인, 영화단체, 관객들이 항의 연명을 제출했고 문화체육관광위가 지난 11월19일 문체부 예산안을 심사하며 관련 예산을 상당 부분 증액했다. 현재 국회예산결산위원회와 기획재정부 동의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효율성을 문제로 독립영화 지원을 꺼리며 벌어진 지금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나.

장우진 황당하다. 50년 지속된 문화행사를 그냥 없앨 수 있다는 상상력이 황당하고 천박하기까지 하다. 이 예산 말고 다른 데는 늘어났나하면 그것도 아니지 않나. 논의를 통해 적절히 줄이겠다는 형식조차도 거치지 않는, 기가 막힌 처사였다.

백재호 서독제는 영진위의 굉장한 성과인데 그것을 왜 스스로 포기하는가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무화시키는 행위다. 도대체 누구의 판단으로 결정된 것인지. 지금의 이런 반응을 예상치 못한 것인지, 이렇게까지 해서 궁극적으로 뭘 지향하려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계속 들었다.

김진유 누구보다 독립영화를 더 성장시켜야 되는 역할을 해야하는 영진위가 독립영화를 버리겠다고 공표하는 것만 같았다. 지난 2년간을 살펴보면, 먼저 지역영화를 없앴고 그다음 영화제 예산을 전반적으로 축소하고 그 가운데 서독제 예산을 0원으로 만들었다. 점진적으로 영화를 없애려는 수순처럼 보일 지경이다. 단편영화 제작지원도 없애려고 하지 않았나. 궁극적으로는 신진 창작자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리고 영진위의 역할이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위원회 구조의 기관 아닌가.영화인의 의견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 이 결정이 더 속상한 것은 그래서다. 이럴거면 영진위가 아니라 문화재단이 아닌가 싶다.

정지혜 상부의 권력에 의해 이 독립영화 진영 자체가 휘청거리고 붕괴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에 화가 나면서 동시에 내부적인 문제의식도 함께 커진 시간이었다고 본다. 관철시킬 부분은 그것대로 주장하고 유지해나가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에 의존하지 않는 제작 구조를 강구해나가야 할 시점이다. 특정 권력 주체로 인해서든 복잡한 정치적 이유나 시장 상황 때문이든 간에 요요동치는 환경에 따라 매번 우리의 기반 자체가 뿌리 뽑힐 것 같은 지경이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 씨네21 - 따로 또 같이, 현재진행형으로 꾸준히 작업해나갈 네 분이 그리는 작업자로서의 청사진은 어떤 것일지 마지막으로 질문드린다.

장우진 <겨울밤에> 이후 6년이 지났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내년에는 꼭 신작 착수 소식을 전하고 싶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립영화 제작 편수가 계속 늘고 있다는 사실, 계속 만들고 시도하고 있는 동료 창작자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도 표하고 싶다. 나아가 주제넘게 당부드리자면… 지금 시작하는 젊은 감독님들께서 더 용감하게 버텨주시길 바란다. 자기만의 목소리, 해소되지 않는 의문점, 끝내 ‘이 이상한 지점은 뭐지?’ 하고 남게되는 잔여물이 있는 영화를 관객으로서 계속 보고 싶다.

김진유 최근 영화잡지 <키노>를 다시 들춰보고 있다. 과거에도 한국영화는 언제나 위기라고 하더라. 그렇다면 내 답은 ‘계속 지키는 수밖에 없다’이다. 영화들은 계속 나와주고 있고, 만드는 사람들은 계속 버틴다. 단적으로 지역영화 예산은 2년째 없지만 지역 영화인들은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다소 막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계속 만드는 한 영화는, 희망은 없어지지 않을 거란 믿음으로 행동하려고 한다.

정지혜 체감상 비평 활동을 전개하는 이들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쓰고 만들고 싶어 하는 창작의 욕구는 전반적으로 오히려 더 강해졌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재능있는 분들이 늘어났다. 분명 반가운 분위기다. 한편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것은 왜 반드시 다른 매체가 아니라 영화로 만들어져야만 하는지, 이 글은 왜 영화에 대한 글이어야만 하는지 스스로 더 질문하려고 한다. 혼자만의 작업으로 끝내지 않고 동료와 만날 수 있는 지점과 맥락을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비평이 연출, 프로듀서, 배우들과 협업할 수 있을지 플로모션 작업을 통해 실험 중이다. 서독제에 참여하는 입장으로서는 온순하고 말랑한 영화보다는 과격한 영화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올해 작품 중 강미자 감독의 <봄밤>이 그랬다. 감정적으로 사람을 쥐고 흔드는, 통각을 자극하는 영화였다. 이하람 감독의 <뭐 그런거지>의 경우 감독님이 영화의 모든 분야를 혼자 다 해결했다.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의미의 독립영화일 테다. 제도가 개선되면 더 튼튼하게 잘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나오겠지만 당장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묘수가 있을까를 생각하는 영화들도 눈에 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백재호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독립영화의 관객이었던 입장을 자주 생각한다. 현시점에서 독립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닿을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고민거리다. 올해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영화인 연대가 꾸려졌고 정치권과 호흡하는 일종의 노하우도 쌓아나가고 있다. 지원 제도의 개선, 극장 대기업의 구조 변경 등 너무나 큰 문제들이 얽혀 있는 사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이야말로 독립영화의 정신이라 믿고 실마리를 계속 풀어나가려 한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