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러브 레터 같은 굿바이 레터,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박효선 감독
2024-12-13
글 : 최현수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지난 한주는 내내 잠만 잤다. 오늘이 되어서야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던 마음의 돌이 한겹 덜어진 기분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인 메릴 스트리프를 혈혈단신으로 만나겠다는 내용의 영화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완성한 뒤 박효선 감독이 시원섭섭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2016년 트위터에서 ‘메릴 스트립 정보봇 한국본부’ 계정을 개설하고 영화제작에 착수한 지 8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영화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왜 메릴 스트리프였을까? 박효선 감독은 중학생 시절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처음 본 메릴 스트리프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의 10대 소녀가 195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 주부의 외로움과 고독을 통렬하게 느꼈다. 메릴 스트리프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메릴 스트리프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통달했던 박효선 감독은 “페미니즘 운동의 선두에서 많은 여성들의 귀감이 되던” 인권운동가로서의 스트리프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영화에서 직접 언급하듯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걷잡을 수 없는 규모의 덕질”과 유사하다. 이는 “좋아하는 밴드를 위해 헌정 곡과 뮤비를 만들었던 것처럼, 대상을 향한 열렬한 헌신보다는 애호의 감정을 매개로 자신을 표현하는 결과물을 만드는” 박효선 감독의 오랜 본성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90년대생처럼 “인터넷 키즈”였던 그의 놀이터는 온라인 공간이었다. 팬포럼,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IMDb), 오래전 손을 놓은 본인의 블로그까지. 박효선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터넷 공간을 “하나의 배경이자 동시에 생동하는 인물”처럼 묘사하려 했다. 취향을 공유하던 커뮤니티는 2010년대 중반이 되어 그가 시작한 ‘#영화계 내 성폭력’ 운동과 여성 영화인들의 연대를 도모한 ‘찍는 페미’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메릴 스트립 정보봇 한국본부’도 그 연장선상에서 시작한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트위터 계정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박효선 감독은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제작 소식을 알렸다. 크라우드펀딩으로 1619명의 후원자를 모집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펀딩 당시 공개했던 배우 임예진의 인터뷰 영상처럼 박효선 감독의 초기 구상은 100명이 넘는 한국의 여성 영화인들과 인터뷰를 한 뒤 메릴 스트리프와 “팬걸이 아닌 페미니스트 대 페미니스트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가 만난 여성들은 모두 입을 모아 메릴 스트리프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에도 너무 지치는데 어떻게 오랫동안 여성 운동을 할 수 있었는지” 묻는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부터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 시위에 이르기까지 메릴 스트리프에게 향하는 여정에서 8년간 한국 여성으로서 경험한 시간이 기록된 것도 이 때문일 테다. 하지만 홍보 담당자의 퇴사부터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난관과 이를 빠져나오려는 발버둥만으로 가득했던” 프로젝트에서 그는 “메릴 스트리프가 일종의 메타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참 웃기게도 이 영화가 박효선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제작 중반쯤 되어서야 깨달았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트럼프 시대에서 시작해 다시 트럼프가 재임하는 시대”에 도착했다고 고백한 이 영화를 두고 박효선 감독은 “열렬한 러브 레터처럼 보이지만, 실은 굿바이 레터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메릴 스트리프의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가 여전히 싸우고 있는 일들과 함께 일궈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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