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세상에 저항할 감독을 양성하겠다”
2012-10-23
글 :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장 겸 영화학교 ‘필름팩토리’ 교장, 벨라 타르 감독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영화학교의 교장으로 벨라 타르를 다시 만났다. 건축의 바우하우스처럼, 혹은 앤디 워홀의 ‘공장’처럼 그는 교육과 운동을 결합하는 ‘필름팩토리’라는 영화학교를 사라예보에 설립했다. 바우하우스에 파울 클레, 칸딘스키 등의 모더니즘의 거장들이 있었다면 이 공장에는 구스 반 산트, 짐 자무시, 아키 카우리스마키 등의 강력한 수호천사들이 있다. 그의 교육의 슬로건은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혁명하라’다.

-뉴 커런츠상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부산을 찾았다. 심사위원장으로서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나.
=감독들한테 기대하는 것은 간단하다. 신인 감독들이 어떻게 자신의 영화 언어를 만들어내는지,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는 영화 언어를 창작하는지,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수적이고 용감하지 않은 영화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왜 젊은 감독들이 그런 영화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런 것들을 용감하게 표현하는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

-당신은 34년여의 영화 인생에서 순응자적인 위치에 있지 않기 위해, 대담하기 위해 어떤것들을 스스로 지켜왔나.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고 개인의 성향에 관한 문제인 것 같다. 나는 그 무엇도 잃고 싶지 않았고 지고 싶지 않아서 타협하지 않았다. 세상이 요구하는 걸 수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건 돈뿐이다. 15분 유명해지고 끝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영화학교를 만들게 된 것도 순응자적이지 않은 감독을 만들기 위해서인가.
=물론이다. 이제 영화 만드는 일에선 손을 뗐다. 무언가 다른 걸 하고 싶은데 무얼 할까 고민하다 필름팩토리를 설립하게 됐다. 설립의 취지는 신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젊은 감독들을 발굴해서 각 감독들이 자기의 스타일, 깊이, 성격을 찾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끔 그 기반을 마련하는 거다. ‘당신은 자유롭다’ 그런 메시지를 말하고 싶고, 그게 학교의 철학이다.

-교육 과정이 3년제고, 1, 2학년 때는 단편, 3학년 때는 장편을 만든다.
=1, 2학년 때 만드는 단편은 3학년 때 만들 장편 위주로 준비하는 시기다. 3년째는 실질적인 제작 과정을 거친다. 워크숍 때 영화제작사 매니저들을 초대해 현실적인 제작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3학년이라고 다 장편을 만드는 건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게 된다.

-당신의 설립 취지문에는 존엄성(dignity)라는 표현이 많다. 이미지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존엄성이 뭐라 생각하나.
=모든 것에는 존엄성이 있다. 살아오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해왔다. 그러지 않으면 깊이 들어갈 수 없다. 이미지의 존엄성은 영상 언어에 대한 존경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게 영화는 쇼 비즈니스가 아니다. 영화는 7번째 예술이고, 영원히 그렇게 남을 것이다. 영화로 돈 벌고 싶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영화를 진심으로 대하는 작가의 작품은 50년, 100년이 지나도 남을 것이다.

-교수진들이 화려한데 그 감독들과 어떻게 같이 하게 됐나.
=그들과는 전 세계 여기저기서 만남을 가져왔다. 실제 만남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통해서 서로 알고 있었다. 그들을 사랑하니까, 간단히 전화기를 들어서 부른 것뿐이다. 교수진인 감독들의 작품들을 보면 나 역시도 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예술 교육이란 게 참 어렵다. 왜 교육이 필요한가.
=잊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학생들도 당신에게 저항하기를 바라나.
=물론이다. 내 슬로건은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혁명하라’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당연히.

-결국은 저항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건가.
=그렇다. 더 강하게 만들고 싶다. 아무것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걸 가르치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힘을 가지고 있으니 자기 자신을 믿어라, 그런 거다.

-1학년 코스에서 당신의 드라마투르기 수업이 독특하다.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등의 작품이 텍스트이다.
=영화의 언어가 있고 문학의 언어가 있다. 그 두 언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건데. 그 언어들의 본질에는 리얼리티가 있다. 그걸 통해 작가의 관점,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드라마트루기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작가의 관점을 가르치려 하는 거다. 그래야 감독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한국에서도 필름팩토리에 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다. 선발 과정. 어떤 절차 통해 학생 지원할 수 있는지. 나이 제한도 없다고 들었다.
=그 어떤 제한도 없다. 여권도, 국적도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는 그가 만든 3장의 작품 DVD이다. 작품의 길이는 3분이든 3시간이든 상관없다. 딱 세 작품이면 된다. 왜냐면 운 좋게 한편의 좋은 영화를 만들 순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영화는 운으로만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3편의 작품을 보면 감독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