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영화학교의 교장으로 벨라 타르를 다시 만났다. 건축의 바우하우스처럼, 혹은 앤디 워홀의 ‘공장’처럼 그는 교육과 운동을 결합하는 ‘필름팩토리’라는 영화학교를 사라예보에 설립했다. 바우하우스에 파울 클레, 칸딘스키 등의 모더니즘의 거장들이 있었다면 이 공장에는 구스 반 산트, 짐 자무시, 아키 카우리스마키 등의 강력한 수호천사들이 있다. 그의 교육의 슬로건은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혁명하라’다.
-뉴 커런츠상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부산을 찾았다. 심사위원장으로서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나.
=감독들한테 기대하는 것은 간단하다. 신인 감독들이 어떻게 자신의 영화 언어를 만들어내는지,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는 영화 언어를 창작하는지,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수적이고 용감하지 않은 영화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왜 젊은 감독들이 그런 영화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런 것들을 용감하게 표현하는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
-당신은 34년여의 영화 인생에서 순응자적인 위치에 있지 않기 위해, 대담하기 위해 어떤것들을 스스로 지켜왔나.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고 개인의 성향에 관한 문제인 것 같다. 나는 그 무엇도 잃고 싶지 않았고 지고 싶지 않아서 타협하지 않았다. 세상이 요구하는 걸 수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건 돈뿐이다. 15분 유명해지고 끝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영화학교를 만들게 된 것도 순응자적이지 않은 감독을 만들기 위해서인가.
=물론이다. 이제 영화 만드는 일에선 손을 뗐다. 무언가 다른 걸 하고 싶은데 무얼 할까 고민하다 필름팩토리를 설립하게 됐다. 설립의 취지는 신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젊은 감독들을 발굴해서 각 감독들이 자기의 스타일, 깊이, 성격을 찾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끔 그 기반을 마련하는 거다. ‘당신은 자유롭다’ 그런 메시지를 말하고 싶고, 그게 학교의 철학이다.
-교육 과정이 3년제고, 1, 2학년 때는 단편, 3학년 때는 장편을 만든다.
=1, 2학년 때 만드는 단편은 3학년 때 만들 장편 위주로 준비하는 시기다. 3년째는 실질적인 제작 과정을 거친다. 워크숍 때 영화제작사 매니저들을 초대해 현실적인 제작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3학년이라고 다 장편을 만드는 건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게 된다.
-당신의 설립 취지문에는 존엄성(dignity)라는 표현이 많다. 이미지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존엄성이 뭐라 생각하나.
=모든 것에는 존엄성이 있다. 살아오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해왔다. 그러지 않으면 깊이 들어갈 수 없다. 이미지의 존엄성은 영상 언어에 대한 존경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게 영화는 쇼 비즈니스가 아니다. 영화는 7번째 예술이고, 영원히 그렇게 남을 것이다. 영화로 돈 벌고 싶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영화를 진심으로 대하는 작가의 작품은 50년, 100년이 지나도 남을 것이다.
-교수진들이 화려한데 그 감독들과 어떻게 같이 하게 됐나.
=그들과는 전 세계 여기저기서 만남을 가져왔다. 실제 만남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통해서 서로 알고 있었다. 그들을 사랑하니까, 간단히 전화기를 들어서 부른 것뿐이다. 교수진인 감독들의 작품들을 보면 나 역시도 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예술 교육이란 게 참 어렵다. 왜 교육이 필요한가.
=잊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학생들도 당신에게 저항하기를 바라나.
=물론이다. 내 슬로건은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혁명하라’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당연히.
-결국은 저항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건가.
=그렇다. 더 강하게 만들고 싶다. 아무것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걸 가르치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힘을 가지고 있으니 자기 자신을 믿어라, 그런 거다.
-1학년 코스에서 당신의 드라마투르기 수업이 독특하다.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등의 작품이 텍스트이다.
=영화의 언어가 있고 문학의 언어가 있다. 그 두 언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건데. 그 언어들의 본질에는 리얼리티가 있다. 그걸 통해 작가의 관점,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드라마트루기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작가의 관점을 가르치려 하는 거다. 그래야 감독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한국에서도 필름팩토리에 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다. 선발 과정. 어떤 절차 통해 학생 지원할 수 있는지. 나이 제한도 없다고 들었다.
=그 어떤 제한도 없다. 여권도, 국적도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는 그가 만든 3장의 작품 DVD이다. 작품의 길이는 3분이든 3시간이든 상관없다. 딱 세 작품이면 된다. 왜냐면 운 좋게 한편의 좋은 영화를 만들 순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영화는 운으로만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3편의 작품을 보면 감독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