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여자들이 주인공이라고 억지로 여자를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2012-10-23
글 : 강병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속죄>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연출 구로사와 기요시, 원작 미나토 카나에. 일본의 WOWOW 위성 방송이 제작한 드라마 <속죄>는 두 명의 이름 덕분에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다섯 명의 여자아이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한 명의 소녀를 죽인다. 소녀의 엄마는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머지 네 명의 소녀에게 “납득할 만한 속죄”를 하라고 주문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에게는 4년만의 컴백작이다. 그리고 첫 TV드라마다. 하지만 구로사와 기요시만의 음침하고 서늘한 기운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쿄 소나타> 이후 4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
=놀았던 건 아니다. 여러 작품들을 기획했지만, 영화로 만들려고 할 때마다 잘 되지 않았다. 제작이 힘들어지면서 많이 좌절했던 시기였다. 이러다 영화를 만드는 감각도 없어질 것 같더라. 빨리 현장에 가고 싶었는데, 그런 와중에 WOWOW 프로듀서로부터 <속죄>의 연출 제안을 받은 거다. TV드라마든, 또 어떤 것이든 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자 했던 때여서 하기로 했다.

-미나토 카나에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고백>이나 그녀가 쓴 다른 작품을 읽었었나.
=솔직히 말하면, <고백>은 읽지 못했다. 나카시마 테츠야가 연출한 영화만 봤었다. 평소에는 아, 저렇게 유명한 작가가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번에 <속죄>를 읽었는데, 책으로는 재밌지만 영상으로 만들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 이야기의 정보들이 모두 여자의 시선으로 치우쳐 있었다. 객관적인 시선을 찾으려고 많이 고민했다. 머리가 많이 아팠지만, 그래도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TV드라마라는 매체에 대해서는 평소 어떻게 생각했나.
=먼 느낌은 아니었다. 촬영 분위기 자체는 큰 차이가 없으니까. 영화도 디지털 카메라를 쓰지 않나. 또 일본에서는 영화감독이 TV드라마를 연출하고, 드라마 연출자가 영화감독이 되는 경우가 잦은 편이다. 가장 큰 차이라면 시나리오를 쓰는 법이었다. 5편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야기가 연속되면서도 하나씩 완결되는 구조여야 했다. 촬영 도중 방송이 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여성을 중심에 놓은 작품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
=맞다. 여성의 시선으로 그려 본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심지어 주인공이 다섯 명이지 않나. 그들을 각각 독립적인 캐릭터로 만드는 것도 도전이었다. 그 결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각 회마다 다른 분위기가 나왔다.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 외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사람들이 여자들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 때도 그랬다. 주인공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어도 관객이 좋아할 수 있는 매력을 찾으려고 했다. 사실 이 드라마 속의 여자들이 남자들 입장에서는 좋아할 수 없는 여자들 아닌가. (웃음) <속죄>에서 나의 가장 큰 목표가 그것이었다.

-전작들은 인물이 처한 사회에서 출발한 이야기였다. <속죄>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전작은 일상에서 뭔가가 폭발하고, 내가 믿던 사회가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는 테마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속죄>에서는 그런 테마를 중심에 놓지 않으려고 했다. 원작이 있기도 했지만, 일단 인물이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남자 중심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내가 남자였기 때문에 그들이 사회와 대립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지만 <속죄>에서는 그게 어렵더라. 나부터가 여자의 입장이 되지 않으려 했다. 내가 일부러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의 약점이 될 수 있으니까.

-원작의 결말과 드라마의 결말이 다르다.
=과연 속죄가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과연 내가 속죄했다고 만족하면 그걸로 끝나는 문제인가. 또 속죄를 하려면 용서를 구하는 대상과 내가 원하는 때가 맞아야 하지 않을까? 원작이 가진 재밌는 부분인데, 속죄를 한다고 하면서 본질적인 사건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나. 그리고 캐릭터마다 속죄의 개념을 모두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지막 5화에서는 그렇게 무엇이 진정한 속죄인가를 묻고 싶었다. 최종적으로는 잘 모르겠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웃음)

-<도쿄 소나타>는 전작들과 매우 다른 영화인 동시에, 또 당신만의 특징이 담긴 영화였다. 또 그때 당신은 “지금까지의 경력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부터 새롭게 반영해야 하는 시기로 여겼다”고 말했다. <속죄> 이후에도 다른 시도를 해볼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작품을 찍을 때, 내가 만들지 않았던 걸 해보려 했다. 하지만 내 개성이 또 어딘가에서 나오더라. 차기작은 이미 지난 7월에 촬영을 끝냈고, 편집 중에 있다. 아마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구로사외 기요시가 이번에는 또 새로운 걸 시도했다고 말할 것이다. 아주 젊은 20대 청춘남녀의 러브스토리다. 그리고 조금 가벼운 SF영화다. 내년 6월 즈음 일본에서 개봉될 거다. 그 다음 작품도 준비 중이다. 지난 4년간 혼자서 쓴 시나리오가 있다. 내년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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