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 속 비일상이 지금 일본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2012-10-2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희망의 나라> 감독 소노 시온

공포영화와 로망포르노 혹은 블랙코미디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소노 시온이 현실의 문제에 전에 없이 한 발 내딛은 영화 <두더지>를 만들었을 때, 그리고 그 영화의 앞과 뒤에 3.11 대지진 피해 현장의 풍경을 넣었을 때만 해도 그가 이 문제를 얼마나 본격적으로 다룰 것인지에 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소노 시온은 마침내 <희망의 나라>를 만들었고 피해지역과 안전지역 그 경계 위에 사는 사람들 혹은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을 그려냈다. 그는 지금 이 이상한 현실에서 결코 눈을 떼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당신은 <씨네21>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일본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 됐건 그걸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진 재해는 달랐다. 그건 나와도 관련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점을 표현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시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라고.
=그렇다. 매주 금요일에 수상관저를 찾아 원폭에 관한 비폭력 시위를 하는 일반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 문제는 정치적인 것과는 무관한,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늘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방사능 문제 말이다. <희망의 나라>에서는 그걸 다뤘다. 무엇보다 목숨하고 관련되는 문제가 아닌가. 오키나와 미군기지라던가 일중 영토 분쟁과 같은 정치적 사상적 문제와는 다른 더 시급한 것이라고 본다.

-당신은 이렇게도 말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을 ‘끝나버린 일상’이라고 표현한다면 지금 일본은 ‘끝나지 않는 비일상’의 시대에 돌입했다”라고. <희망의 나라>는 정확히 그에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많이 다뤄온 방사능의 위기. 그 비일상이 지금 일본의 풍경이 된거다. 장르적으로 동경하던 것이 현실이 되면서 더 이상 동경할 수 없도록 된 것이다. 그러니 나를 비롯하여 모두가 희망을 말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내가 사는 집은 원전피해 지역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데, 측정해 보면 방사능이 검출된다. 말그대로 비 일상의 지속인거다.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 지역을 여러 번 찾았다고 알고 있다.출입금지 지역까지 들어갔고 실제 피해 지역 주민들과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많이 만났다던데.
=6개월 정도 취재를 했다. 영화 속 가족의 모델도 거기서 가져왔다. 방사능 피해 지역과 안전 지역의 경계선에 집이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이건 정말이다. 집의 절반이 정확히 한쪽은 피해지역 한쪽은 안전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꽃밭의 절반은 꽃이 피는데 나머지 절반은 꽃이 죽어 있는 풍경을 보게 되는 거다. 그야말로 부조리다.

-엄청난 피해자가 생긴 거대한 사건을 영화로 만드는 입장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피해자들에게 영화적 윤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뒤따랐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예 지금의 많은 영화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이 일이 안 일어난척, 모르는 척 하는 거다. 영화화를 하지 않는 거다. 그냥 상업영화만 계속 만들면서. 하지만 나는 그래도 하는 쪽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 영화를 보고 상처를 더 깊이 새기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하는 것이 더 맞다고 봤다.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자들 중에는 왜 잊고 싶은 기억을 꺼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잊히기 때문에 우린 말해야만 한다.

-영화 속 젊은 부부와 노부부는 일종의 피해 이후 피해자들의 어떤 반응 양상이다. 생존을 위해 안전지역으로 떠나간 사람들과 그래도 끝내 피해지역에 남은 사람들 말이다.
=방사능 사태가 일어났던 체르노빌에 지금도 사람들이 산다는 걸 알았을 때 처음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해도 된다. 방사능 피해는 사실 몇십 년 후가 되어야 백혈병과 암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생업이 거기 있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그 소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느냐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뉴스 방침이 너무 규제되어 잘 안 알려져 있는 사실들이 있는데 후쿠시마에서 피난가지 않았던 초등학생들 50퍼센트가 이미 초기 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내 영화에서라면 그곳에 남아 사는 걸 택한 사람들, 즉 노부부가 그런 경우다. 떠나고 남고의 문제에서는 남녀 차이도 있다. 나도 지금 아이를 가지려고 계획 중인데, 후쿠시마로 취재를 간다고 하면 아내가 무서워한다. 비교해보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크게 걱정한다. 때문에 후쿠시마에서는 지금 이혼율이 높아졌다. 이유는, 여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고 남자들은 생업이 여기 있으니 살자고 하면서 그렇게 된 거다.

-장르 영화의 실력자인데 <희망의 나라>처럼 현실에 근접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건 당신 작업의 지속적인 길이 될 것인가.
=이제 내게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첫번째는 여전히 장르주의다. 부산에 오기직전에 장르 영화 한 편을 완성하고 왔다. <지옥에서 노는 게 뭐가 나빠?>라는 영화다. 당신이 극장에서 팝콘 먹고 콜라마시며 볼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두번째는 상업영화로 다뤄지지 않는 문제를 내 영화에서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피해를 주제로 한 영화 제작에 이미 들어갔고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유령 도시가 되어 버린 풍경들을 담아내고 있으며 동시에 드라마도 찍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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