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스탭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가세 료다. 허름하고 편안하게 차려입은 상의 한쪽 주머니에는 담배와 안경을 구겨넣었고, 만나서는 첫인사 대신 “어제 인터뷰를 오늘로 미뤄 죄송합니다”라며 사과부터 얼른 전한다. 격식없이 편안하게 살되 예의있게 사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당대 일본의 스타 배우 중 한 명이면서도 그는 재는 게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일본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에도 그의 결정은 단 하나였다. 오디션부터 보자!
“어떤 이야기인지 어떤 역할인지 아무 상관이 없었다. 평소 존경하던 감독님의 영화였기 때문에 일단 가서 오디션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옛날 영화배우로 데뷔할 때도 가세 료는 용감했다. 존경하는 영화배우 아사노 타다노부의 소속사를 무작정 찾아가 일년이나 아사노 타다노부의 비공식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까지 배우의 길을 준비했던 사람이다. 가세 료의 바람은 이루어졌고 그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서 조금은 단순하고 저돌적이지만 극중 인물 중 누구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에 목말라있는 남자 역할을 맡았다. 여주인공의 약혼자이자 자동차 수리공이며 이 영화의 시한폭탄 같은 인물이다. “자동차 수리공이 직업인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의 조금 험악한 이미지를 가져왔다(웃음). 어떤 영화가 될 것인지 사실 현장에서는 잘 몰랐는데 영화가 전부 완성된 후에야 진의를 알게 됐다.”
완성된 영화를 본 다음 가세 료가 제출한 감상평은 지금껏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 관하여 들어본 해석 중 가장 멋진 해석이다. 요약건대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안전지대에 갇혀 사는 두 사람과 현실을 대면하며 거칠게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러니 가세 료를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 그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매력적인 사람이다. 총명함과 솔직함과 섬세함과 게다가 유쾌함을 그는 짧은 인터뷰에서조차 발산했다. 우리는 이제 그를 기타노 다케시의 신작 <아웃레이지 비욘드>에서 다시 볼 수도 있겠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 영화에서는 긴장해야만 한다. 리허설 한번, 슛 한번 뿐이다! 실수하면 어떻게 되냐고? 그 장면은 없어지는 거다!” 그래도 가세 료는 없어지지 않고 돌아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