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했다. 2018년 연말 베스트영화를 선정할 때 평자들의 요구가 있었다. 2차 매체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소개된 좋은 영화가 많으니 이제 선정 대상을 늘려야 한다는 불만이었다. 겨우 1년 만에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굳이 범주를 늘리지 않아도 이미 넷플릭스 영화들이 올해의 영화 1, 2, 3위를 모두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한정적이나마 극장 개봉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다. 그만큼 시네마의 가치를 충실히 구현하는 작품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현상의 방증이기 때문이다. 시네마란 무엇인가. 지난해 겨울 <로마>가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면 올해는 <아이리시맨>과 <결혼 이야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로마>와 <아이리시맨>은 온전한 감상을 위해 극장에서 본다는 체험이 매우 중요한 영화이기에 이와 같은 모순적 상황 자체가 적지 않은 질문들을 촉발시킨다.
<행복한 라짜로>는 평자들의 고른 지지에 힘입어 공동 3위에 올랐다. 반면 <아사코>는 숫자는 적었지만 대신 높은 순위로 강력한 지지를 보낸 덕분에 5위를 차지했다. 외국영화의 경우 올해 역시 다채로운 작품들이 거론되어 전반적으로 표가 분산된 경향을 보였다. 거기에 상대적으로 <아이리시맨>과 <로마>에 많은 지지가 몰린 까닭에 매우 근소한 차이로 5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가 갈렸다. 비록 순위권 밖이었지만 <지구 최후의 밤> <가버나움> <조커> <하이 라이프> <라스트 미션> <레토> <언더 더 실버레이크> <그녀들을 도와줘> 등 재발견되어야 마땅할 영화들이 넘쳐난 한해였음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6위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 돌아갔다.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애니메이션으로만 가능한 기적”(임수연)을 보여준 이 작품은 “슈퍼히어로물의 근원이 만화”(김봉석)였음을 새삼 환기시킨다. 공동 6위를 차지한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를 새로운 서부로 삼은 21세기의 할리우드 수정주의를 우아하게 탐구”(허남웅)한 작품으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을, 그 인간에게 지독하게 무심한 우주라는 공간을 통해 아름답고 잔인하게 담아낸 영화”(박정원)라는 호평을 얻었다.
8위는 폴 슈레이더의 절절한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퍼스트 리폼드>다. “끝도 없이 지속될 것 같던 생의 무력감을 생생하고도 기적적인 입맞춤으로 이겨버린다. 브레송으로 시작해 드레이어의 기적을 끌어내는 영화”(홍은미)라는 평가가 이 영화의 매력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9위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9번째 영화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다. “만듦새로 따지면 <아이리시맨>과 상하를 나누기 어렵다”(이용철)는 이 애정 어린 결과물은 “<아이리시맨>과 더불어 감독 자신의 영화세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김현수)이기도 하다. 10위는 아녜스 바르다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 돌아갔다. “바르다의 삶과 예술 세계가 집대성되어 있는, 손수 지은 바르다 박물관”(홍은애)이라고 할 만하다. 2019년은 좋은 작품들이 넘쳐난 만큼 ‘영화란 무엇인지’를 되묻는 질문도 쏟아져나온 한해였다. 지금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클래식영화들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역설적으로 영화의 미래와 가능성에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물론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이 영화 창작의 순수성, 작가성을 지원하는 이같은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OTT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또 다시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올해의 경향을 되돌아보며 2020년을 예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늘 그렇듯 미래는 우리의 예상을 앞질러 이미 도착해 있다.
외국영화 10선
01. <아이리시맨> 02. <로마> 03. <결혼 이야기> <행복한 라짜로>(공동) 05. <아사코> 06.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애드 아스트라>(공동) 08. <퍼스트 리폼드> 09.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10.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