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국영화는 양적, 질적으로 모두 풍성한 한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업영화의 획일화와 하향평준화 등 규모가 큰 기획영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하지만 가능성의 씨앗을 틔운 한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감독의 영화, 작가의 영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지적에 응답이라도 하듯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결과물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올해 모두의 시선을 앗아간 영화는 누가 뭐라 해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김보라 감독의 <벌새>였다. 각각 상업•독립영화 진영에서 빼어난 성취를 선보인 만큼 이에 대한 필자들의 지지 역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압도적이었다. 두 영화 모두 비단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서의 수상이나 평단의 반응뿐 아니라 대중적인 관심을 모아 흥행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2019년 한국영화의 상징으로 기억될 만하다. 3위를 차지한 <강변호텔>의 홍상수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지만 아무래도 시대성을 적극 반영하고 올해의 지표가 될만한 성과를 낸 두 영화에 비해 다소 관심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걷는 작가에 대한 꾸준한 지지와 상찬은 이어졌다.
지난 몇해 동안 주춤했던 독립영화의 다양성을 받쳐주고 있던 부분이 다큐멘터리였는데, 그중에서도 강상우 감독의 <김군>은 전환점이라 해도 좋을만큼 빼어난 성취를 이뤘다. 올해 과소평가된 작품으로 유독 많이 언급되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치를 새삼 증명한다. 5위의 <미성년>은 ‘감독 김윤석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배우들의 감독 데뷔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김윤석 감독은 연출 데뷔작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과물을 선보였다. <기생충>과 <벌새>에 워낙 압도적인 지지가 몰린 까닭에 6위 이하의 순위부터는 그야말로 종이 한장에 불과한 미세한 차이로 순위가 갈렸다. 6위를 차지한 <아워 바디>부터 10위의 <얼굴들>까지 사실상 거의 차이 없이 고른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의 여성 서사 영화 중 가장 복합적인 욕망의 갈래를 보여준”(장영엽) <아워 바디>는 올해의 키워드인 독립영화, 여성감독의 약진의 선두에서 있는 영화다. “바람직함의 족쇄를 벗어난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특히 기억할 만하다.”(김혜리) 7위의 <메기> 역시 독립•여성감독이라는 연장선에 있지만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우리 모두가 상상한 적 있지만 정작 본 적은 없는 기이한 발랄함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폭을 한 발짝 넓혔다.”(이지현)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는 “한국 중년 여성의 퀴어 서사를 다룬 흠잡을데 없이 안정적인 드라마로서 주제나 정서를 향한 강박 없이 사려 깊은 온기와 소박한 태도”(김소미)로 지지를 받아 8위를 차지했다. 9위는 기획 장르영화로서는 드물게 순위에 오른 <엑시트>다. “올해 가장 짜릿하고 통쾌한 탈주극”(김현수)인 이 영화는 상업영화의 기획이 어떻게 시대를 담아내면서도 세련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10위는 이강현 감독의 <얼굴들>에 돌아갔다. “숏과 숏 사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유영하듯 탐구”(박정원)하는 이 영화는 감독의 색깔과 개성을 온전히 드러내고 보존하는 영화가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증명한다. 다양성이 폭발한 만큼 과대, 과소평가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는데 거의 겹치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올해의 다양성을 증명했다. 시대를 읽는 감각과 치열한 주제의식부터 영리한 방식의 장르 활용, 우직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가는 작가 감독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쏟아져나온 백가쟁명(百家爭鳴)의 한해였다.
한국영화 10선
01. <기생충> 02. <벌새> 03. <강변호텔> 04. <김군> 05. <미성년> 06. <아워 바디> 07. <메기> 08. <윤희에게> 09. <엑시트> 10.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