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한국영화 1위 <기생충>
예상된 결과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지지는 처음이다. 설문 답변을 보내온 25명의 기자, 평론가 중 5명을 제외한 모든 필자가 <기생충>을 1위로 뽑았다(무순 제외). <씨네21> 연말 베스트 역대 가장 높은 점수로 올해의 영화에 선정된 <기생충>은 “한국영화 100주년에 당도한 무시무시한 수작”(장영엽)이다. <기생충>을 수식할 말은 차고 넘친다. 우선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생충>은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하다. 게다가 천만 관객의 선택을 받아 평단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의 효용적 가치와 더불어 시네마가 지닌 성찰성을 매우 고상하고 면밀하게 담았다”(이지현).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통찰한 뒤 자신만의 언어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가성을 새삼 증명했다. “계급투쟁이 사라진 시대에 계급의식/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영화의 공간과 운동으로 그린”(김혜리) <기생충>은 “봉준호의 영화적 궤적이 변증법적으로 합일된 작품”(황진미)인 셈이다. 이 모든 찬사는 결국 ‘봉준호 영화’ 혹은 ‘봉준호 장르’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봉준호 감독은 장르의 틀 위에서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되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진하게 녹여내왔다. “한국 사회의 구조도가 진저리쳐지도록 적확하게 구현된 봉준호 월드”(홍은미)는 “약자끼리 투쟁하다 스스로를 추방하는 위험사회에 사는 관객의 심장을 조인다”(송형국). 게다가 그 표현방식은 “서스펜스, 유머, 슬픔, 분노, 희열 등 없는 게 없는 영화적 즐거움”(남동철)으로 충실하기까지하다. 그리하여 “<기생충>은 어느덧 영화적 차원을 넘어 다양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읽히게 되었다”(이용철). 다소 낯간지러운 호들갑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기생충>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영화는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장영엽)
올해의 한국영화 2위 <벌새>
<벌새>는 2019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현상이라 할 만하다. “성장영화이자 여성영화로서 압도적 존재감”(남동철)을 보여준 이 영화는 단순히 잘 만든 독립영화, 성장영화를 넘어 “한국영화 여성 서사의 한 분기점이 된 2019년을 대표하는 작품”(송형국)이 되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시애틀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 44관왕(2019년 12월 기준)이란 부지런한 수상 실적은 그 무게감과 주목도를 증명한다. 하지만 트로피의 무게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벌새> 이후 찾아올 변화들이다. “오정희의 소설이 있던 자리에 드디어 도착한 한국영화”(김혜리)로서 <벌새>는 “지금까지 게토화되어 있던 중학생 여자아이의 일상을 확장해 보편화시켰다”(듀나). “무심히 지나온 그 시절을, 집요하면서도 차분하게 응시하는 시선”(조현나)과 “일상으로 스며드는 죽음의 무게를 정교하게 포착한 단단한 연출력”(김지미)이 결합하여 과거를 되돌아보면서도 지금 시대와 공명하는 목소리를 발하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한국영화에 드물었던 이미지와 장면 연출에 대한 믿음을 지킨다”(김소미)는 점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복고, 레트로 따위의 트렌드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감각을 유지하면서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갈 방향키를 발견해내는 감각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김현수). 부디 그 부지런한 날갯짓이 계속 이어지길.
올해의 한국영화 3위 <강변호텔>
홍상수는 변하지 않는다. <강변호텔> 앞에서 “언제나 낯익고 낯선 홍상수 월드”(남동철)를 발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홍상수는 한번도 변하지 않은 적이 없다. 작가로서 홍상수의 영화는 늘 유일했다. 시간이 흘러가고 나이를 먹는 만큼 정확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의 영화 역시 변해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드물게 죽음의 묘사가 등장하고 일종의 몽타주가 삽입된 <강변호텔>은 그 이례성만큼이나 강렬하고 기이한 전율을 안긴다.”(김소미) “이 영화는 보이는 것을 소리내어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시각화해 드러낸다. 꿈과 죽음, 사랑이 그렇게 스크린에 이중적으로 새겨지는 것”(이지현)이다. 그리하여 <강변호텔>은 “단절된 공간과 시간이 병렬되고 재배치되면서 홍상수의 어느 영화보다 생과 사의 경계가 불투명하고도 불길하게 비쳐지고 있지만, 동시에 삶과 죽음의 충만하고도 쓸쓸한 기운이 더없이 맑게 생성되어간다”(홍은미). 변하지 않되 항상 변하는 모순적 상황. “머물며 바라보기와 한 걸음 내딛기”(김소희) 사이에서 진실을 포착하는 영화. 그때나 지금이나 ‘홍상수’라는 반응들에는 오직 영화로만 설명될 수 있는 어떤 순간이 깃들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에 대한 홍상수의 사랑, 홍상수에 대한 우리의 애정을 다시금 확인한다.
올해의 한국영화 4위 <김군>
올해 유난히 좋은 다큐멘터리가 많았지만 <김군>은 감히 “한국 다큐멘터리의 전환점”(김봉석)이라 부를 만하다. 올해의 과소평가 영화로도 수차례 거론된 <김군>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새로운 세대의 시선으로 다시금 탐색하고 성찰한다”(장영엽). 광주민주화운동의 어두운 이면에 파묻혔던 목소리를 따라가는 이 우직한 다큐멘터리는 “항쟁의 주역이었던 시민군을 중심에 두고, 그들이 누구이며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1인칭 관점에서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도 정직하게 비춘다”(황진미). “‘1980년 광주’의 시공간이 가진 집단적인 상징성을 넘어 그 안에서 기억되어야 할 인간의 개체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김지미)을 이어가는 것이다. <김군>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거나 문제를 고발하는 대신 켜켜이 쌓인 시간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갔고,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한다. 이것은 “역사의 시간을 현재의 절박한 시선으로 살아내려는 시도”(홍은미)다. 그리하여 <김군>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사진 한장으로 역사의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경이로움”(허남웅)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올해의 한국영화 5위 <미성년>
기대 이상이다. 혹은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비껴간다. “어떤 야심보다는 주어진 재료를 최대한 섬세하게 관찰해 엮어내겠다는 뚝심이 보이는데, 자기 객관화와 영리함, 타고난 재능을 모두 갖춘 신인감독의 탄생”(임수연)이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사정을 살펴 성장의 길을 열어주는 성숙한 연출”(허남웅)은 “감독 김윤석의 주목할 만한 가능성”(남동철)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게 한다. <미성년>에 대한 상찬의 한 갈래가 연출력이라면 다른 한 갈래는 배우들의 연기와 앙상블이다. “주변부에 머물던 아이들을 화자로 내세워 성년의 책임감에 관해 논하는”(조현나) 이 영화는 “성년의 미숙함과 몰염치에 대한 솔직하고 우스꽝스러운 고백과 미성년의 미덕을 과장 없이 담아낸다”(김지미). 이 과정에서 배우 김윤석은 철저히 뒤로 물러나고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대립과 경쟁 관계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여성들이 오히려 연민과 우정으로 연대의 감정을 나누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계의 역전을 제시”(황진미)하는 것이다. “염정아의 캐릭터와 연기를 잊긴 어렵다”(김혜리)는 평처럼 이 부분을 채워주는 건 결국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네 여성배우의 존재감이다. 그야말로 올해의 데뷔작이자 “올해의 캐스팅이며 올해의 앙상블”(임수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