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22년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보고타' 김성제 감독
2022-01-13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세계의 끝으로 향한 사람들

<보고타>

제작 영화사 수박, 이디오플랜

감독 김성제

출연 송중기, 이희준, 권해효

배급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개봉 2022년

관전 포인트 “난 2001년이 됐을 때 21세기가 시작된 줄 알았다. 그런데 21세기는 코로나19와 테슬라와 AI와 함께 지금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의 20세기는 언제 시작됐을까? 1945년 8월 이후인 것 같다. 그래서 깨달았다. <보고타>는 20세기에 대한 영화다. 21세기가 시작되는 지금, 20세기 끝자락 먼 곳으로 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김성제)

인천공항에서 콜롬비아 보고타까지 가기 위해서는 최소 2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직항 항공편이 없기 때문에 한번 혹은 두번 경유를 해야만 도착지까지 갈 수 있다. <보고타>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가기 힘든 곳까지 날아간 이민자들의 이야기다. 남미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주로 그리는 마약 범죄나 내전이 아닌, 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며 생존을 위해 버티는 삶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국적 공간을 차별화된 방식으로 접근했다. 사법 시스템의 부조리를 속도감 있는 법정 드라마로 탁월하게 고발한 <소수의견> 이후 오랜만에 연출을 맡은 김성제 감독을 만나 이번 신작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왜 콜롬비아인가

<보고타>는 20대 때 콜롬비아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신범수 영화사 수박 대표의 개인적 기억이 투영된 프로젝트다. 연출을 제안받은 김성제 감독은 콜롬비아에서 직접 한인 이민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신범수 대표의 기획을 하나씩 구체화해나갔다. “콜롬비아는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다. 태어난 곳으로부터 점점 먼 곳으로 떠나가게 되는 정서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콜롬비아 한인 사회에 계신 분들을 인터뷰해보니 더 큰 세계로 가는 게 아니라 점점 폐쇄적인 커뮤니티에 갇히게 됐다는 말을 하시더라. 거기에서부터 실마리를 얻었다.”

돈을 벌기 위해 옷장사를 했던 사람들

김성제 감독은 취재 과정에서 남미 이민자들의 두 가지 유사점을 발견했다. 첫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옷장사를 한다는 것. 둘째, 자신이 남미에서 계속 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콜롬비아는 커피벨트(북위 25도, 남위 25도 사이의 벨트 지대로 커피 재배에 적당한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다.-편집자)에 속해 있지만 보고타는 안데스산맥 고원 분지에 있다. 때문에 1년 내내 10~20도를 유지하는 상춘 기후대에 속해 있다. 냉난방을 거의 하지 않는 보고타에서 패딩 점퍼가 인기 있었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그렇게 <보고타>의 주인공들이 옷장사를 한다는 설정이 시작됐다.

한국 이민사가 담겨 있는 이름, ‘국희’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 김호선 감독의 영화 <애니깽> 모두 1905년 4월 일포드호를 타고 제물포항에서 멕시코를 향해 떠나간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국주의 시대의 끝자락, 에네켄이나 사탕수수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고 먼 남미로 떠난 사람들은 정작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이 바로 남미의 첫 한인 이민자 세대다. 이후 한국 이민사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때 칠레로 떠난 병아리 감별사들을 거쳐 1990년대 옷장사를 시작한 사람들, 즉 <보고타>의 시대배경으로 이어진다. 송중기가 연기하는 주인공, ‘국희’라는 이름은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가능한 이름이다. 김성제 감독은 <애니깽>에서 장미희가 연기했던 캐릭터와 이름이 같다는 것에서 개인적인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송중기의 남성성

“보고타에 딱 도착했을 땐 이쪽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현지 사회에 익숙해진다.” 송중기에게 ‘서울우유’처럼 뽀얀 이미지를 먼저 연상하는 관객에겐 그가 콜롬비아에서 거친 풍파를 겪는 이민자 청년을 연기하는 것이 다소 의외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성제 감독은 “실제 배우가 가진 성향과 기질은 굉장히 남성적”이라며 배우와 캐릭터가 만났을 때 빚어내는 화학작용을 기대했다고 전한다. “연기자로서 경험과 스킬은 물론 대중영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영향력, 특히 멋진 목소리까지 국희를 연기할 수 있는 최적의 배우였다.” 그래서 국희는 기존 액션 누아르 장르의 마초성 강한 남자들과는 차별화되면서, 주도적이고 자기 개성이 뚜렷한 새로운 남성성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탄생했다. 송중기는 <보고타>에서 국희가 콜롬비아에 막 도착한 10대 후반부터 현지 사회에 완전히 자리 잡은 30대 초반까지를 연기하며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희준부터 조현철까지, 탄탄한 조연진

<보고타>의 수영은 대기업 상사 주재원으로 콜롬비아에 온 후 타고난 수완으로 성공한 사업가다. 김성제 감독에게 “이희준은 예전부터 자기만의 그루브를 갖고 약간 엇나가게 연기하는 배우”였다. 때문에 이미 남미 사회에 완전히 적응한 수영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전형성을 배우의 개성을 통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국희 아버지의 베트남전 전우이자 한국 상인회의 우두머리 박 병장은 국희에게 유사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된다. <소수의견> 때 인연을 맺었던 권해효에게서 “그동안 매체에서 연기하던 인물과는 다른 얼굴, 예컨대 악당 같은 얼굴을 찾아보고 싶었다”는 감독은 그에게 국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캐릭터를 맡겼다. 그 밖에 조현철은 “감정의 콘트라스트를 잘 보여주는 에너지”를 선보일 예정이며,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남미 미녀가 아니며 목소리가 다른 남미 배우들보다 반톤 정도 낮은” 후아나 델리오 역시 호연이 기대되는 배우다.

팬데믹 상황을 돌파한 프로덕션

<보고타>는 코로나19로 인해 우여곡절이 많았던 프로젝트다. 2020년 1월 콜롬비아에서 시작된 촬영이 팬데믹 상황에서 중단됐지만, 촬영분의 연결성을 확보할 수 있는 프로덕션을 재정비한 후 지난해 한국에서 촬영을 재개해 모든 분량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보고타 현지 촬영에 참여한 황기석 촬영감독과 로컬 크루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한국 촬영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성제 촬영감독이 바통을 넘겨 받아 프로젝트에 합류했고, 이종건 미술감독이 보고타에서 한국까지 연속성 있게 참여해 비주얼의 일관성을 지켜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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