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22년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밀수' 류승완 감독
2022-01-13
글 : 임수연
주인공은 해녀, 장르는 수중 범죄활극

<밀수>

제작 외유내강

감독 류승완

출연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 김종수

배급 NEW

개봉 2022년

관전 포인트 “처음부터 <밀수>의 목표는 ‘너무 재밌어서 앉은자리에서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가 되는 거였다. 영화의 쾌감은 당연한 것이고, 그 쾌감을 두번 느끼게 하고 싶은 영화 말이다. 배우들이 그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영화를 또 보고 싶게 만드는 캐릭터들을 배우들이 만들어냈다. 배우 보는 맛이 상당해서 나 역시 후반작업하는 내내 그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류승완)

류승완, 김혜수, 염정아. <밀수>가 2022년 한국영화 최고 화제작으로 꼽힐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의 이름만으로 설명된다. 심지어 그들이 만드는 영화가 1970년대 밀수 범죄에 휘말리는 해녀들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밀수>는 오랜만에 류승완 감독이 순도 높은 장르영화를 연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짝패>와 같은 액션영화를 한창 만들 때 보여줬던 키치한 개성과 팔딱 뛰는 에너지를 떠올리게 하면서, 거대 제작비가 투입된 <베를린> <베테랑> <군함도>를 거쳐 <모가디슈>로 충무로 최고의 프로덕션 능력을 증명한 이후의 노련함을 기대케 한다.

- <밀수>를 연출하는 것은 언제쯤 결정됐나.

= 조성민 외유내강 부사장이 <시동> 로케이션 헌팅을 갔다가 그 지역 박물관에서 1960~70년대 밀수가 횡행했다는 자료를 봤고, 거기서부터 <밀수>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연출할 계획은 없었다. <모가디슈> 후반작업을 할 때쯤 그때까지 진행된 각본을 보고 흥미가 생긴 거다. 굉장히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와 관계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이거 재밌겠다는 생각에 꽂혀서 갔다.

- 시대극인 데다가, 해녀들의 움직임을 가지고 만드는 범죄활극은 웬만한 구력으로는 컨트롤하지 못할 프로젝트 같다. 류승완 감독 정도 되어야 가능하지.

= 그건 모르는 거다. 신인감독들이 훨씬 과격한 시도를 할 수도 있다. 오히려 류승완이 만든다는 데서 생기는 선입견 탓에 불리한 점도 있다. 이를테면 액션이 엄청 풍부할 것 같다는 기대 말이다. 그런데 <밀수>는 예측 범위를 조금씩 벗어나는 영화다. 일정 부분은 관객의 기대에 부합할 거고, 일정 부분은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 <모가디슈>는 흥행(<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하기 전까지 2021년 극장 최다 관객수를 기록했다.-편집자)은 물론 프로덕션의 완성도, 실화를 다루는 태도까지 고르게 호평받으며 코로나19로 침체된 한국영화계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모가디슈> 같은 작품 이후에 사회적 의미가 크다거나 보다 묵직하게 다가오는 소재가 아닌, 장르영화의 쾌감이 기대되는 작품을 준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지금까지 필모그래피를 보면 전작에 대한 일종의 반항 심리가 있는 것 같다. <주먹이 운다> 이후에 <짝패>, 그다음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그리고 <부당거래>를 만드는 식이었으니까. 폭력적이고 거친 액션영화를 만들어오긴 했지만 장르적으로 보면 좌충우돌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밀수>는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두편의 영화(<군함도> <모가디슈>)를 만든 이후 오는 반작용일 수도 있겠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순도 높은 장르영화에 가까운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게 됐다.

- 70년대 당시 정부는 밀수가 마약이나 탈세처럼 굉장히 심각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사회 범죄는 <부당거래>나 <베테랑>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밀수>에서는 어떤가.

=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건, 내 전작을 떠올리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전혀 도움이 안될 거라는 것이다. <밀수>는 내가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들과 굉장히 다르다. <부당거래>나 <베테랑>처럼 어떤 사회적 이슈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메시지를 선언하기보다는 훨씬 더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밀수 범죄에 휘말려든 사람들이 서로 관계가 변하면서 개별 캐릭터들이 상승하거나 하강하거나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친다. 내 기억에 당시 밀수는 최악의 범죄라기보다는 이게 범죄라고 인식하기도 어려울 만큼 만연한 범죄였다. 밀거래를 통해 생필품이 거래됐기 때문이다. 밀수는 규범과 제도가 만들어낸 범죄다. 국경이 존재하고, 통제 때문에 밀거래가 시작되고, 이전에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범죄가 된다. 남북 대립 상황이 첨예했던 냉전 시대에는 어떤 학자의 이념을 수입하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러울 만큼 폐쇄적이었다. 그런데 원래 사람들은 금지된 것을 더 욕망한다. 보다 좋고 새로운 것을 쓰고 싶은 마음, 영화배우들이 입는 옷과 선글라스를 갖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밀수품을 찾는다. 통제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욕망하는 물건을 거래하는 서스펜스, 거기에 매력을 느꼈다.

- 김혜수와 염정아가 연기하는 해녀들은 어쩌다가 밀수에 휘말리게 되나.

= 70년대 경제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이타이이타이병과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해안에 있는 군천이라는 가상의 시골 마을에서 물잡이를 하는 해녀들 역시 공장이 들어서면서 해산물 수확이 예전 같지 않게 된 거다. 생계의 위협을 느끼던 그들이 밀수를 시작하면서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 해녀 역할에 김혜수, 염정아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인가.

= 원래 두 배우의 연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팬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두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싶었고,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주인공이지만 여성성이 너무 강조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뭐랄까, 그건 일종의 잔머리를 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그들이 온전한 인물로 보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는데, 캐릭터 자체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에너지를 가졌다는 측면에서 두 배우는 강력한 여성성을 뛰어넘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다.

- 사실 류승완 감독은 예전에도 여성배우들이 이끄는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전도연, 이혜영 주연의 <피도 눈물도 없이>가 있었다. 혹시 두 영화에 비슷한 요소가 있나.

= <피도 눈물도 없이>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들 때만 해도 많이 미숙해서 모든 게 넘쳐나는 영화를 만들었다. 지금 냉정하게 봤을 때 <피도 눈물도 없이>는 장르의 세계 속에 인물들을 구겨넣은 영화였고, <밀수>는 인물들이 장르를 이끌어간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상당히 마초적이지만, <밀수>는 훨씬 입체적이고 복잡한 결을 갖고 있다. 보여지는 것과 물의 내면 심리가 조금씩 다 달라서 하나의 컨셉으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 김종수 네 배우의 활약 역시 기대된다.

= 조인성 배우는 베트남전 참전 당시 밀수 사업에 눈을 뜬, 전국구 밀수왕으로 나온다. 박정민 배우는 해운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해녀들을 돕는 순박한 청년으로 나온다. 고민시 배우는 다방 레지로 시작해서 마담까지 올라가는, 야심에 찬 여인을 연기한다. 그리고 김종수 선배는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우직한 세관원으로 나온다. 이들이 서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 한국에서 수중 중심의 범죄활극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수중촬영 비중이 높아서 여러모로 만만치 않았을 텐데.

=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수중에서 펼쳐지는 굉장히 중요한 시퀀스들이 있다. 해저의 풍광이 명확하게 보여야 하는데, 실제 바다에서 찍는 것은 여러 변수 때문에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수중 세트에 해초를 모두 세팅해놓고 촬영했다. 예전 작품들처럼 맨땅에 헤딩하듯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가며 만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배우들의 컨디션이었다. 해당 숏을 찍는 시간만큼 숨을 버텨줘야 한다. 물속에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어서 포기할 것들은 빨리 포기하자고 판단을 내릴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 녹음실에서도 걱정인 게, 음향기사들이 정우성, 최민수 주연의 <유령> 이후 물속 사운드를 해본 지가 너무 오랜만이란다. (웃음) 그래서 후시녹음할 때 턱받이 같은 것을 두고 물을 마시면서 물 뱉는 소리를 낸다든지 하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이렇듯 70년대 바닷속 밀수 현장의 디테일을 담아낸 노력만큼 관객도 영화를 흥미롭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 수중촬영에서는 조명을 어떻게 쳐야 하나. 또한 다양한 서스펜스 요소를 어떻게 화면에 녹여낼 것인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와 스탭들의 안전이었다. 실제 바다에 나가서 찍은 장면도 꽤 되는데, 바다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말 때를 잘 만나야 한다. 게다가 70년대가 배경이라 옛날 배를 써야 했다. 최소 정예 스탭들만 움직이기 때문에 뱃멀미도 신중하게 대비해야 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바다는 어두워지는데 그에 대한 리얼리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물속 액션은 느릴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재미를 위해 물리법칙을 너무 무시할 수도 없어 그런 밸런스를 조절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 하지만 그렇게 성공한 수중 액션에는 확실히 다른 쾌감이 있을 듯하다.

= 스쿠버 장비도 없이 물속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을 찍으면서 장시간 잠수에 성공해서 화제가 되지 않았나. 그 정도의 기록은 아니었지만 <밀수>의 배우들도 헌신적으로 긴 테이크를 버티며 직접 소화한 신들이 있다. 이러한 진짜의 액션을 스크린에 담아내 관객 또한 함께 느낄 수 있다면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해녀들의 움직임’이 액션의 주체가 된다. 해녀들의 움직임에서 발견한 장르영화의 가능성은 무엇이었나.

=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고 상하·좌우 동선의 액션을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만들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촬영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는 물에서 찍지 않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웃음) 그리고 조인성이 벌이는 액션 시퀀스가 하나 있는데, 조인성이 대단히 멋있다.

- <모가디슈>에도 근사한 액션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 영화가 조인성의 ‘미남력’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진 않았다.

= 이번에는 ‘미남력’의 끝장을 보여준다. (웃음) <모가디슈> 했던 팀이 <밀수>를 했는데, “조인성이 이런 배우였어? 같은 사람이야?” 하면서 찍었다. <밀수>를 통해 조인성은 굉장한 미남 스타라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70년대가 배경이라 당시 시대상을 어떻게 재현했을지 궁금하다.

= 인물을 자연스럽게 보여줘야지 배경이 인물을 압도해서는 안됐다. 시대를 과시하기 위한 세팅은 일부러 피했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배경을 보여주기 위해 청각적인 부분도 신경 썼다. 아마 지금까지의 한국영화 중 가장 풍부한 사운드트랙이 선곡된 작품일 거다. “이때 이런 곡이 있었어?” 70년대의 괴상한 로큰롤을 원없이 들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신중현, 산울림, 나미, 이은하 등 10~20대가 들을 땐 완전히 생소한, 40대 후반 이상은 잊고 있던 익숙함을 떠올리는 선곡 리스트가 될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 출연배우들의 현장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는 말을 들었다.

= 우리는 하던 대로 했을 뿐 이번 작품에서 특별한 건 없었다. 다만 달랐던 것은 현장에 스피커를 설치해서 내가 마이크로 디렉션을 했다는 것 정도? 역으로 나나 스탭들에게는 배우들의 호흡이 특별했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늘 배우들에게 감사하지만 그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 모습들을 이번에 봤다. 주연배우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스탭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심지어 김혜수 선배는 촬영이 끝나고 세트에서 막내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감동적이라고 울기도 했다. 그거, 스탭들이 맨날 하는 일이었는데. (웃음) <밀수>팀과 얘기를 나눠보면 다들 굉장히 행복했다고 기억하고 있더라. 물론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그런 지점을 훨씬 넘어서는 어떤 것이 현장에 존재했는데, 그 중심에는 배우들이 있었다. 현장에서 자기 분량이 끝났는데도 계속 남아 있을 만큼 서로를 그렇게 좋아했다. <밀수>는 내게도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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