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브>
제작 안나푸르나필름
감독 강형철
출연 이재인, 유아인,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배급 NEW
개봉 2022년
관전 포인트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모든 스탭이 열심히 공부하고 회의하며 공을 들여서 탄생시킨 초능력자 액션 신들이 있다. 엉뚱하게 풀기도, 심각하게 풀기도 했다. 그 안에서 매력적인 배우들이 기술과 함께 합쳐져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이 확실히 있을 거다.”(강형철)
돌이켜보면 강형철 감독은 언제나 앙상블의 영화를 만들었다. 과속해서 낳은 딸과 그 딸이 과속해서 낳은 손자와 함께 가족이 되는 <과속스캔들>, 전라도에서 온 전학생이 칠공주에 합류하는 <써니>, 남과 북과 미국과 중국이 함께하는 댄스단이 등장한 <스윙키즈>까지, 티격태격하던 사람들이 결국 융화하는 과정을 줄곧 그려왔다. <하이파이브>의 다섯 주인공은 초능력자로부터 장기이식을 받고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 “처음부터 잘 맞기보다는 서로 갈등하던 사람과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본능적으로 좋아한다”라는 그답게 이 영화의 히어로들은 유치한 이유로 싸우고 툴툴대다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 마블이나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와 달리 <하이파이브>의 주인공들은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 첫 영화부터 함께했던 유성권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아이디어가 참 많다. 서로 갖고 있는 아이템을 이야기하다가 그가 갖고 있던 걸 내가 덥썩 문 거다. ‘초능력자의 장기이식을 받게 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로그라인이 매력적이었다. 주변에 있을 법한 이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는, 재미있는 잠깐의 망상이 <하이파이브>의 시작점이었다. 소소하게 시작된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커지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이웃들의 이야기다.
- 장기이식을 받은 후에 주인공들은 어떤 능력을 갖게 되나. 이들이 함께할 액션도 궁금하다.
= 자료 조사를 해보니 일반적으로 장기이식을 6군데 받을 수 있더라. 그래서 각자 장기에 해당된 초능력을 받는다. 고대 벽화에도 초능력에 관한 기록이 있고, 드라큘라도 이 능력을 갖고 있었으며, 시대에 따라 초능력은 계속 다른 사람의 몸으로 옮겨간다는 설정이다. 특정한 사람이 모든 능력을 소유하게 되면 위험하기 때문에 6명에게 이를 나눠주려는 시도들이 계속 있었다. 태권소녀 완서(이재인)는 심장을 이식받으면서 힘이 굉장히 센 소녀가 된다. 그런데 자기 능력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고 평소처럼 학교 다니면서 똑같이 생활한다. 백수 기동(유아인)은 각막이식을 받고 와이파이 같은 전자기파를 눈으로 본다. 그런데 그 능력으로 정말 쓸데없는 짓만 할 거다. 폐를 이식받은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은 숨 참기를 오래 한다. 멋진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는 능력이다. (웃음) 공장 관리인 약선(김희원)은 간을 이식받아서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힐러 역할을 하고, 라미란씨가 연기한 프레시 매니저(야쿠르트 아줌마의 새로운 이름.-편집자)의 능력은 아직은 감춰두겠다. 사실 굉장히 힘을 줘서 찍은 중요한 전투 신이 있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냥 후루룩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했다. 관객은 그냥 즐겁게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공을 들여 연출한 것, 이번 영화에는 그런 신들이 굉장히 많다.
- 배우 캐스팅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먼저 태권소녀 이재인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 백상예술대상에서 <스윙키즈>로 감독상을 받던 해 재인이가 <사바하>로 신인상을 받았다. 너무 좋은 하드웨어를 갖고 있고 말하는 모습도 매력적이라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고 1여년간 몰래 지켜봤다. (웃음) 그러다 <하이파이브>에 들어가게 되면서 배우에게 딱 붙는 캐릭터가 생겼다. 극중 이야기의 설명서 같은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데, 현장에서 다들 “우리 재인이” 하면서 굉장히 예뻐했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 친구다. 함께 작업하면서 <써니>의 심은경이 떠올랐다. 물론 두 사람이 가진 개성은 다르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가 또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 유아인의 백수 연기는 어떨까. 굉장히 힙한 백수가 되지 않을까. (웃음)
= 배우들의 일부는 백수로 살고 있으니까. (웃음) 모든 연기를 다 자기화해서 훌륭하게 해내는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만나니 가진 매력이 엄청났다. 그는 카메라 렌즈 앞에서 정말 신기한 오브제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더 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 유아인을 맛도 못 봤어!’라고 생각했다. 스타 유아인과 배우 유아인이 있지 않나. 이번 <하이파이브>에서는 다른 배우들과 잘 놀다 갔고, 스타 유아인은 별로 없다. 존재감은 뛰어나지만 혼자 튀지 않는 밸런스를 잘 보여줬다. 엄청난 스타가 앙상블이 중요한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 배우로서 굉장히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 라미란은 프레시 매니저로 나온다. 작가 지망생으로 나오는 안재홍과 모자 상봉을 한 셈이다(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모자관계로 나왔 다.-편집자).
= 라미란씨는 만능 열쇠다.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붙으면서 시너지를 일으키는 연출 방식에서 즐거움을 얻곤 했는데, 라미란씨가 모니터 앞에 나오면 나는 그냥 구경을 하게 되더라. 그렇게 연출자를 관객으로 만들어버리는 배우다. 안재홍과는 서로 호칭이 애매하더라. 처음에는 ‘엄마’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누나’라고 하고. (웃음) 마치 영화감독들이 하는 일 없을 때 시나리오 쓴다고 하는 것처럼, 안재홍이 연기하는 작가 지망생도 사실은 그냥 백수다. 안재홍과는 예전부터 사적으로 알고 지낸 사이다. 만약 카메라를 켜놓고 1시간 동안 찍는다면 1시간짜리 영화가 될 수 있는 배우다. 그동안 작품을 통해 드러난 매력보다 훨씬 더 많은 매력을 갖고 있다.
- 유아인의 백수와 안재홍의 백수는 좀 다를 것 같은데.
= 배우가 원래 갖고 있던 느낌을 특성화해서 캐릭터에 녹이는 게 작가이자 감독의 의무인지라 전혀 다른 백수들이 탄생했다. 두 사람은 요즘 말로 티키타카를 하는 관계로 나온다. 영화에서 계속 싸운다. (웃음) 분열의 시대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화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두 캐릭터를 통해 너무 심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현실의 김희원은 <아저씨> 같은 영화의 악역 이미지와 전혀 다르지 않나. 그런 점에서 그가 유쾌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반갑다.
=실제로는 귀여운 아저씨지. 평소 예능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똑같다. 김희원 선배는 허리띠 풀고 하는 연기랄까, 무척 편안하게 연기하는 게 매력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원래 갖고 있던 능력은 그대로 가져가되 너무 선하다 못해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섯 주인공 중 가장 나이가 많아서 배우들 동선도 맞춰주고 함께 놀 듯이 동료들을 잘 이끌어줬다.
- 캐스팅 소식이 알려진 또 다른 배우, 진영이 연기할 캐릭터도 궁금하다.
= 초능력자로부터 췌장을 이식받은, 굉장히 매력적인 빌런 중 하나로 나온다. 현장에서 큰 박수를 받은 배우다. 유아인도 “저 친구 연기를 진짜 잘한다”라고 인정했다. 그의 캐릭터는 작품의 재미를 위해 직접 영화를 보고 확인하시라.
- 주인공들이 힘을 합쳐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지만, 각자 갖고 있는 능력은 거창하지 않고 그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하이파이브>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읽힌다.
= 우리에게도 초능력까진 아니어도 삶의 목표라든지 존재 이유라든지 무언가를 잘할 수 있는 작은 능력들이 있다. 이 또한 일종의 초능력이 아닐까? 주인공들에게 초능력이라는 선물이 주어졌듯이 우리 역시 그런 선물을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