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22년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교섭' 임순례 감독
2022-01-13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요르단 현지 로케이션 무사 완료

<교섭>

제작 영화사 수박

감독 임순례

출연 황정민, 현빈

배급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개봉 2022년

관전 포인트 <교섭>의 이야기 대부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된다. 제작진은 요르단에서 아프가니스탄 분량을 촬영했는데, 모래바람 날리는 중동의 낯선 공간과 인물들이 영화에 어떻게 담겼을지, 함께 영화를 찍는 것이 처음인 황정민과 현빈이 해외 로케이션에서 빚어낸 케미스트리와 비하인드 신이 궁금한 작품이다.

<리틀 포레스트> 이후 임순례 감독이 선보이는 <교섭>은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선교 활동을 하러 간 23명의 한국인이 아프간 무장단체 탈레반에 피랍됐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와 극단적 기독교주의. 극단의 두 종교적 신념이 부딪혀 발생한 사건이지만 영화는 피랍된 한국인들을 어떻게 해서든 안전하게 구출하려는 두 주인공의 인본주의적 활약에 집중한다. 황정민이 탈레반과의 교섭에 나서는 외교부 직원 재호를, 현빈이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 대식을 연기한다. 지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무사히 요르단 해외 로케이션을 마치고 돌아온 임순례 감독은 현재 후반작업도 거의 마무리 중이었다.

- 최근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동물권행동 카라의 대표직에서 물러나 영화 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 이것저것 맡고 있는 게 많았는데 좀 내려놓고 쉬려 했다. 사회적 나이도 있고. 환갑이 지난해였던가, 지지난해였던가. 환갑이 되면 하던 일 내려놓고 조용히 은거하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예전에 타로점을 볼 때 이런 얘길 했더니 “그렇게는 안될걸요”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웃음) 맡고 있던 일들을 내려놓으면 나를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엄청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 그래도 요즘은 영화에만 집중하며 지내고 있다.

- <교섭>은 계속 후반작업 중인가.

= 2020년 9월 중순에 해외 촬영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왔고, 그해 10월부터 편집을 시작해서 1년 넘게 후반작업 중이다. 개봉일이 잡히면 언제든 바로 공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 <리틀 포레스트> 이후 차기작으로 <교섭>을 택했다. <리틀 포레스트>와 비슷한 결의 작품 연출 제안이 많았을 것 같은데 <리틀 포레스트>와는 전혀 다른 영화를 차기작으로 선보이게 됐다.

= 잔잔한 휴먼 드라마쪽을 기대하셨을 텐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제보자> <리틀 포레스트> <교섭>까지, 세 영화의 성격이 모두 다르다. 세편 모두 영화사 수박의 신범수 대표가 기획했는데, 지나고 나서 얘기지만 세편 다 흔쾌히 하겠다고 했던 건 아니다. <제보자> 때도 시나리오만 보고는 자신이 없었다. 한학수 PD가 쓴 두꺼운 취재기를 읽고 나서 이 인물이 언론인으로서 얼마나 치열하게 취재했는지가 눈에 들어왔고, 줄기세포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언론에 포커스를 맞추면 괜찮겠다 싶어 연출을 맡았다. <리틀 포레스트>도 원작 일본영화의 분위기와 리듬을 어떻게 한국 관객에게 대중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 쉽지 않은 작품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2016년 하반기였는데, <아수라> 같은 피 튀기는 액션영화들이 유난히 흥행하던 때라 한편으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리틀 포레스트> 같은 잔잔한 영화가 줄 수 있는 평화로움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교섭>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제보자>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교섭>은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고, 악당과 영웅과 무고한 피해자가 정확히 구분되는 전형적인 장르영화의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지도 않다. 극단적 기독교와 극단적 무슬림, 두 극단의 종교적 신념이 부딪히는 센서티브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외교부 직원과 국정원 직원처럼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풀어보면 괜찮을 것 같았다.

- 얘기한 것처럼 민감한 종교적 문제, 외교적 문제가 얽힌 사건이라 영화적 스토리텔링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 보통 피랍과 인질을 소재로 한 작품에선 위험에 처한 주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들을 구했으면 좋겠다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피랍된 이들이 전투적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이야기의 도입에서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관객이 탈레반의 인질이 된 이들에게 반감이나 호감을 느끼지 않아야 했고, 그들을 구해야 하는 외교 공무원(황정민)과 안보 공무원(현빈) 두 주인공의 라인을 잘 따라갈 수 있게끔 해야 했다. 절묘한 스탠스를 잡는 것이 어려웠고 또 중요했다.

- 주인공은 황정민이 연기하는 외교 공무원 재호, 현빈이 연기하는 국정원 요원 대식이다.

= 재호는 유능한 외교관이자 유능한 협상가다. 반면 대식은 아웃사이더로 중동 지역을 떠돌며 지낸 인물이다. 재호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지녔고, 대식은 사고도 행동도 자유롭다. 두 캐릭터는 성격적으로 부딪히는 부분도 있고 몸담고 있는 부서의 입장 차이 때문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외교부는 테러범들과는 절대 협상할 수없다는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재호도 처음엔 그 원칙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다 결국 사람의 생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해서든 납치된 이들을 구하려고 한다. 비록 그들이 스스로의 만용으로 위기에 처했더라도, 사람의 목숨은 구해야 하는 거니까. 국민으로서 당연히받아야 할 보호가 있고, 그들을 구해야 할 책임은 우리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두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 황정민과 현빈, 두 배우의 조합은 어떻게 떠올렸나.

= 황정민씨와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함께했는데, 그 뒤로 언젠가 다시 한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교섭>에는 관객을 잘 설득할 수 있는 힘 있는 배우가 필요했고, 정민씨가 떠올랐다. 현빈씨는 개인적으로 황정민씨와 친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연기한 적은 없더라. 두 사람의 친밀함에서 오는 케미스트리가 있겠다고 봤다. 서로에 대한 인간적 신뢰가 있어서인지 두 사람의 투숏에서도 그런 끈끈함이 느껴졌다. 물론 극중에선 아웅다웅하는 관계로 나오지만. 외국인 배우도 다수 출연한다. 언어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다. 아프간에선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데, 파슈툰족과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은 파슈토어, 수도에선 다리어를 쓴다. 그런데 영화 촬영은 아프간이 아닌 요르단에서 했고, 요르단 현지 배우들은 아랍어를 쓴다. (웃음) 요르단 배우들에게 아프간어를 가르쳐야 했다. 통역사 카심 역할을 맡은 한국의 강기영 배우도 아프간어를 구사해야 해서, 국내에서 언어를 지도해줄 사람을 어렵게 물색해 아프간 언어 코칭을 받았다. 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아프간 출신 배우들도 캐스팅했는데, 다국적 배우들이 장소를 옮겨가며 찍다보니 언어 문제 등 여러 다중고가 있었다.

- 2020년 7월부터 두달가량 요르단에서 해외 촬영을 진행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 운이 좋게도 당시 요르단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국은 K방역으로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때였고. 운이 좋았다고 말한 건, 요르단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요르단의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사전에 세번 정도 요르단을 방문했기 때문에 막상 촬영차 들어갔을 땐 요르단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요르단에서 할리우드 영화 촬영이 많이 이루어져서인지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영어에 능통한 스탭들이 많다. 촬영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또 중동에서 안전한 지역 중 하나였고, 지형적으로도 아프간과 유사해서 요르단을 해외 로케이션지로 정했다. 우리를 고생시킨 건 날씨였다. 한여름 중동의 사막 지대에서 촬영해야 했는데, 차에 있으면 온도계에 53도가 찍혔다. 요르단 현지인들이 8월에 사막에서 영화를 찍으면 다들 더위에 쓰러질 거라고 엄청 겁을 줬다. 막상 촬영 들어가니 한국 스탭은 한명도 안 쓰러졌고, 누가 쓰러졌다고 해서 확인하면 요르단 스탭이었다. 한국 사람들 참 독하다. (웃음) 코로나, 언어, 기온, 음식까지 해외 로케이션이 쉽진 않았지만 예정된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다행이다. 실제 아프간에서 찍지 못한 것은 조금의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만.

- 순제작비 140억원 규모의 영화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여성감독이 제작비 100억원대 영화를 연출한 적은 없었다.

= 처음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해외 촬영이 동반되어야 하니 제작비가 100억원은 넘겠다고 생각했다. 해외 촬영도 익숙한 나라가 아니라 낯선 곳에서 진행될 테고, 코로나19 이슈까지 있어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믿음은 있었다. 전형적인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닌데도 이 작품에 투자가 되ㅋ고, 좋은 배우들이 붙었고, 유능한 스탭들이 참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히려 이 시나리오에 힘이 있나보다 하고 역으로 내가 시나리오의 힘을 확인받았다. 지금까지 이언희 감독이 <탐정: 리턴즈>, 엄유나 감독이 <말모이> 같은 상업영화를 만들었지만 100억원대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를 연출한 여성감독이 그동안 전무했고, 그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온 것은 맞다. <교섭>이 잘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해외 촬영도 안전하게 마쳤고, 아직까지는 운이 따라주고 있는 것 같다. 개봉에 쓸 운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웃음)

- 공교롭게도 지난해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아프간에 관한 소식이 한국 뉴스에도 자주 등장했다.

=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기 전이었다. 수도 카불 탈출 작전이 긴급하게 벌어지던 때 아프가니스탄 공사참사관이 한국을 도운 아프간인들을 한국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하고 그 약속을 지킨 일도 굉장히 영화적이었다. 이전엔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이 막연하고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최근의 사건 이후 <교섭>의 이야기도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 관객이 <교섭>을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나.

= 영화에 나오는 풍경이나 사람, 상황이 낯설 수 있는데, 낯선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이색적인 것 속에서 보편적인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극단성이 이야기의 발단이지만, 그 안에서 보편적이고 상식적이고 소중한 가치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 시나리오 막바지 작업 중인 게 하나 있다. 동물영화이고, 돌고래 이야기다. 내가 막 왔다 갔다 한다. 시골에서 사막으로, 사막에서 다시 바다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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