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지만, 박찬욱만큼 안주하지 않는 거장도 없다.”(이주현) 평자들은 일제히 그의 끊임없는 변화에 주목했다. “작품을 거듭할수록 더 멀리, 더 예기치 못한 곳으로 나아가는 예술가도 존재한다는 점을 일깨우고”(장영엽),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관객의 예상치를 벗어나는 새로움이 다루는 소재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허남웅)는 것.
박찬욱의 무량 세계는 자신의 터를 허물고 다시 짓는 과정에서 비로소 놀라운 풍경에 둘러싸인다. 박찬욱 감독이 정밀하게 가공한 <헤어질 결심>의 리얼리티 속에선 낭자한 유혈이나 금기로 얼룩진 섹스 없이도 사랑과 복수, 욕망의 각축전이 벌어진다. 기지가 번쩍이는 시점숏과 매치컷, 줌과 패닝의 절제된 사용으로 고전의 품위를 풍기는 <헤어질 결심>의 양식미에 “‘시네마’의 언어, 표현 특성을 다루는 능력이 경지에 올랐다”(장병원)는 찬사도 따랐다. 막상 들여다보면 12개의 주머니가 달린 희한한 양복 같은 이 영화를 “올해 나온 한국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영화”(듀나)로 호명한 이도 있었다. “멜로드라마, 코미디, 스릴러, 추리를 커버하는 온갖 대중적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박찬욱은 언제나 박찬욱이니까.”(듀나)
박찬욱 감독은 현재 HBO 맥스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의 쇼러너이자 각본가, 7개 에피소드 중 3개 에피소드에 참여하는 감독으로서 LA에 머물며 작업 중이다. 신작을 낼 때마다 올해의 감독으로 호명되곤 하지만, 2022년은 특히 한국영화 1위, 감독·남녀 배우·시나리오·촬영에서까지 압도적으로 득표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촬영상을 못 받을 때가 많아서 종종 김지용 촬영감독을 약 올리곤 했는데(웃음) <씨네21>이 만회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그에게 <헤어질 결심>은 “성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를 줄여 자극은 덜어내는 한편 성숙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말하자면 영화가 영화로서 존재하는 요소들에 집중한”작업이었고, 필모그래피적 관점에서는 “전작들에 비해 한결 미니멀한 작업을 시도한 것에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다고 느낀다”.
골든글로브 비영어권 영화상 후보 지정을 시작으로 내년 3월에 열리는 오스카까지 본격적인 시상식 레이스를 앞둔 시기, 그는 “해외에서도 영화를 여러 번 본 사람이 많다는 것이 <헤어질 결심>의 특이한 점”이라면서 “각자의 언어에 맞게 그 뉘앙스를 짐작하면서 해외 관객도 잘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번 열애한 영화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일은 박찬욱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동조자> 작업 중 연말 휴가를 받아 간만에 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됐는데 아마도 <헤어질 결심> 일본 개봉 홍보를 하게 될 것 같다. 모처럼의 금쪽같은 휴가는 도쿄행에 내어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