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보완적으로 완벽한 버디 라이터”(이자연)인 정서경 작가(사진)와 박찬욱 감독. “잠깐 나오는 캐릭터의 대사 한마디에서 해당 인물의 지나온 시간을 유추하게 하는 능력은 이들의 20년 가까운 공동작업이 쌓아올린 성과”(허남웅)다. 특히 정서경은 박찬욱의 영화에 여성 인물의 개성과 충동, 시대정신에 기반한 설득력 있는 내적 동기와 동화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부여하면서 독자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헤어질 결심>은 특히 고유한 물성을 지닌 정서경표 명대사들이 세간에 부지런히 회자되었다.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사랑과는 맥락상 거리가 먼 일상적 언어로 표현”했고, 그렇게 해준(박해일)의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가 나왔다. 최근 정서경 작가는, 이 대사가 단순히 오늘날 장르영화에서 테크놀로지 사용이 불가피한 측면만 반영한 것은 아니며 “우리가 핸드폰을 사용할 때 마치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고, 그 안에 누군가가 들어 있는 것처럼 대한다는 것. 겉보기엔 너무나 현대적인 산물이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정신은 옛날과 똑같다는 점을 깨닫고, 폰을 버리라는 말이 사랑을 깊은 곳에 감추라는 뜻이 될 수 있음을” 스스로도 새롭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어휘의 환희로 빛난 <헤어질 결심> 이후, 정서경 작가는 요즘 8부작 드라마를 준비 중이며 “매일 아침 눈뜰 때 오늘은 무엇을 쓸지, 어디에서부터 쓸지 고민하는”작가의 루틴을 이어가고 있다. “쓰는 사람의 루틴이 곧 내 정체성이 된 것 같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