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만큼 도발과 모범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감독이 또 있을까. 변성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청춘 그루브>(2010)는 제각각 개성을 가진 20대 청년들의 꿈과 욕망을 힙합 리듬에 녹여낸 청춘영화였다. 전작인 <나의 PS 파트너>(2012)는 발칙한 키워드로 출발해 보편적인 연애 감성을 일깨웠던 귀엽고 신선한 로맨틱 코미디였다. 두 작품 각각 봉태규와 지성이라는 남성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정반대 위치에서 깨부순 작품이기도 했다. 그가 5년 만에 선보일 세 번째 영화 <불한당>(제작 CJ엔터테인먼트, 바른손·배급 CJ엔터테인먼트)은 남성주인공들의 누아르다. 전혀 다른 길을 걸었으나 우연히 교도소에서 만나게 된 두 남자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서로의 눈에 들고, 신뢰를 쌓고, 닮아가고,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어느 순간 ‘남성영화’에 대한 갈증이 생겨 <나의 PS 파트너> 작업을 같이한 김민수 작가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 감독의 말이다.
전작들만큼이나 배우의 조합이 신선하다. 누아르에 오랜만에 복귀하는 설경구와 누아르라는 거친 장르와는 연이 없어 보이던 임시완의 뜻밖의 만남이다. 설경구의 경우는 변성현 감독이 “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팬”이었기에 출연을 몹시 바랐다고 한다. “설경구 선배는 초창기 시절 이름을 알린 <박하사탕>(1999) 때부터 ‘아재’ 이미지가 강했다. 폼 잡는 캐릭터를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선배는 한마디로 ‘간지’가 난다.” 대체로 욕심 없고 의로운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해온 임시완은 이번 작품에서 이전과 크게 달라질 만한 어떤 ‘시도’를 했다고 하니 그의 변신도 관심을 모을 법하다. 참고로 <불한당>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배역의 이름인 ‘재호’는 <리얼>(2005), <무비스타 한재호씨의 메쏘드 연기>(2006) 등 감독의 단편들에서 줄곧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내 오랜 친구 이름인데 소위 말하는 학교 ‘짱’ 출신이라 나보다 싸움을 잘해서 주인공 이름으로 자주 쓴다. (웃음) 영화에 쓰는 대부분의 이름들이 친구 이름이다. ‘조현수’도 역시 친구 이름에서 따왔다.”
흥미로운 점은 <불한당>이 “낯선 코믹북 느낌의 누아르”라는 것이다. “장르물을 하려고 한 이상 확실하게 영화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한국적인 리얼리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런 면에서 일등 공신은 <4등>(2015)의 조형래 촬영감독과 <경성학교: 사라진 아이들> (2015), <해어화>(2016)의 한아름 미술감독이라고. 어쩐지 배우와 키스탭의 이름과 ‘코믹북’의 연관이 쉬이 상상이 되진 않지만 그동안 변성현 감독이 보여온, 낯선 것과 익숙한 것 사이를 능란하게 조율해온 균형감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기대를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어떻게든 구해서 볼 수 있는 모든 누아르”로 장르 연습을 했다는 말만 믿어도 안심이 된다.
synopsis
교도소 내 최고 권력자 재호(설경구)는 세력 확장 중 반대파 조직원에게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는다. 신참 현수(임시완)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재호는 현수의 패기를 마음에 들어 하고, 현수 또한 재호의 인간미와 카리스마에 마음을 연다. 출소 뒤 두 남자는 재호가 몸담은 조직에서 재호를 1인자로 만들기 위해 합심하지만 점차 서로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며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