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가 하나의 캐릭터다.” 나현 감독의 데뷔작 <더 프리즌>(제작 큐로홀딩스·배급 쇼박스)은 제목 그대로, 교도소 자체가 주인공이기도 한 영화다. “이른바 ‘교도소 영화’의 전형적인 포맷이 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주인공, 죄수들을 억압하는 교도관, 교도관 몰래 탈옥을 시도하는 죄수들. 그런 교도소 영화들의 전형적인 설정을 뒤집어보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해봤다. 밖에서 웬 거물이 살해당했는데 용의자가 A다. 그런데 A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러면 이건 미제사건이 된다. 어떤가?” 죄수의 교화를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실상은 온갖 범죄가 만들어지는 곳. <더 프리즌>의 교도소는 그런 곳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교도소에서 진행되기에 1990년대 중반의 교도소를 사실적으로 재현할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실제 국내의 교도소는 촬영 목적으로 쉽게 개방해주지 않았고, 전·현직 교도관들의 인터뷰도 어려웠다”고 한다. “때깔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감독은 지금은 폐쇄된, 실제 교도소를 섭외해 당시 수감됐던 사람들이 사용한 물건까지 똑같이 만들어서 소품으로 썼다. 벽에다 한 낙서까지도 그대로 살렸다.
시나리오작가로 먼저 영화계에 입문해 10여년 사이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마당을 나온 암탉>(2011), <남쪽으로 튀어>(2012) 등 따뜻하고 가족적인 스토리를 꾸준히 써온 나현 감독의 데뷔작이 냉혹한 무드의 교도소 영화라는 것은 다소 뜻밖이다. “휴먼 드라마를 여러 편 썼더니 안 써본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앞서 준비하다 엎어진 영화 두편도 하나는 신문사 기자 스토리였고, 또 하나는 칙칙한 하드보일드였다.
<더 프리즌>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은 내가 다 사악해지는 기분이 들더라. 프로듀서하고 서로 ‘우리 이거 끝나면 정신과 치료 받아야 한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웃음)” 나현 감독은 “교도소를 들여다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교도소란 공간은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브라질이나 멕시코 교도소들은 꽉 막혀 있고 무시무시하잖나. 반대로 북유럽 교도소들은 굉장히 개방적이다. 그 사회의 범죄와 범죄 교화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그런 살벌한 공간을 지배하는 자. 주인공 익호를 한석규가 연기한다. 거대한 악과 부조리, 부정의 중심에 있는 남자다. “익호는 악의 축이지만, <다크 나이트>(2008)의 조커 같은 존재다. 그 자체를 완전한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프리즌>에서 보여줄 ‘악’이 어떤 의미일지 궁금증이 커진다.
나현 감독의 프로필엔 유독 ‘단역 출연’이란 꼬리표가 자주 눈에 띈다. “시나리오작가 시절, 작가치고는 꽤나 현장을 많이 기웃거린 결과”다. 기술 스탭도 아닌데 현장에서 눈에 띄니 엉겁결에 단역으로 자꾸 투입이 된 것이다. 그땐 재미로 했다지만 그 덕에 데뷔 감독답지 않은 현장 지휘력을 뽐낼 수 있었다고. <더 프리즌> 최지윤 프로듀서에 따르면 “현장 편집본과 최종 편집본의 러닝타임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시간 활용이 경제적이었고, 그림 그리는 특기도 있어 콘티작가가 바쁠 땐 콘티도 대신 그렸다. 작가 경험이 있어서인지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고치는 일이 없도록 실용적으로 시나리오를 써왔다”고도 한다. 나현 감독은 연출이 시나리오 쓰기보다 “덜 고독해서 좋다”고 한다. 앞으로 현장에서 그를 더욱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synopsis
1990년대 중반, 범죄 의뢰를 받고 유능한 죄수들을 내보내 뒷돈을 챙기는 교도소가 있다. 익호(한석규)는 그곳에서 죄수들의 왕으로 군림한다. 어느 날, 한때 검거율 100%를 자랑했던 전직 경찰 유건(김래원)이 죄수의 신분으로 입소한다. 유건의 패기를 마음에 들어 한 익호는 유건을 오른팔 삼아 교도소 바깥의 정치권력까지 좌지우지해보려는 큰 뜻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