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희망 없는 시대에 희망을 말하다 - <재심> 김태윤 감독
2016-12-26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생각보다 빨리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다.” 김태윤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 사례를 바탕으로 한 <또 하나의 약속>(2013)을 연출할 때만 해도 얼마간 공백이 있을 수 있다는 각오도 했다. 다행히 <또 하나의 약속> 개봉 후 바로 제안받은 이야기가 김태윤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2000년 전북 익산의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재심>(제작 이디오플랜·배급 오퍼스픽쳐스)은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 소년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재심을 신청한 어느 변호사의 이야기다. “제안받았을 당시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세간의 관심을 그리 받지 못하던 때다. 오히려 영화화를 통해 부조리한 일들을 환기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덕분에 영화의 주인공인 박준영 변호사는 물론이고 누명을 쓴 최씨를 설득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크랭크업한 지 한달 뒤인 11월17일에 무죄판결이 났다. 실제로 그렇진 않았겠지만 영화 제작이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는 박준영 변호사의 격려를 잊을 수 없다.”

문제는 또 한번 실화를 다룬다는 부담감에 있었다. 하지만 그건 김태윤 감독에게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의식 있는 사람이 아닌데, (웃음) 데뷔작으로 인해 받게 된 오해 같은 것도 있다. 한편으로 감사하면서 부담도 된다. 나로서는 영화적으로 나를 자극하는 이야기가 있었기에 도전하는 것뿐이다.” 그가 말하는 ‘영화적’인 요소는 관객을 대리만족시킬 수 있는 극적인 사건을 의미했다. “대중영화란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을 실현시켜주는 환상적인 면모가 있다. <재심>은 절망에 빠진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다. 사건 자체도 말이 안 되고 억울한 면이 있지만 그걸 해결해준다고 돕는 변호사가 있다는 게 내겐 더 판타지로 다가왔다.” <또 하나의 약속>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라 되도록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다큐멘터리적인 측면이 짙었다면, <재심>은 좀더 각색의 묘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고 한다. 처음엔 피해자에게 맞춘 초점이 수정을 거치면서 변호사에게로 옮겨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캐릭터가 중요하다. <변호인>이 연상될 수도 있는데, 평범하고 속물적인 변호사가 약촌오거리 사건을 계기로 재심 전문 변호사의 길에 들어서는 이야기라고 봐도 좋다.”

정우가 변호사 이준영 역에, 강하늘이 억울한 피해자 현우 역에 캐스팅된 <재심>은 지난 10월3일 3개월간의 촬영을 마치고 내년 2월 개봉을 목표로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시나리오만 완성도가 있으면 캐스팅도 문제없고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는 김태윤 감독은, 젊은 배우들과 일하고 싶었던 만큼 정우와 강하늘의 연기를 통해 자신이 에너지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블라인드 시사 때 나온 클라이맥스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에 힘을 얻어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회가 힘들고 부조리할 때 영화도 따라서 독해지기도 한다. 얼마나 가혹하고 나쁜 사회인지 보여주는 영화들도 많다. 다만 <재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희망 없는 시대에 작은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따뜻한 영화로 기억되길 바란다.”

synopsis

자신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던 변호사 준영(정우)은 어느 날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한 청년 현우(강하늘)를 만난다. 억울한 수감 생활 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우를 보고 준영은 그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긴 법정 싸움을 준비한다. 2000년 전북 익산의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과 이를 둘러싼 재심 과정을 소재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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