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어둔 밤> 심찬양 감독 - 덕후의 에너지, 영화가 뭐라고 이렇게 신나지?
2019-02-08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심찬양 감독의 <어둔 밤>은 대학 영화감상 동아리 ‘리그 오브 쉐도우’의 멤버들이 히어로영화를 찍게 되는 과정을 그린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안 감독(송의성), 심 피디(심정용), 요한(이요셉), 조빙(조병훈), 상미넴(김상훈) 등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심찬양 감독의 대학 선후배거나 지인이다. 하지만 ‘리그 오브 쉐도우’는 존재하지 않는 동아리고, 이들이 크리스토퍼 놀란과 히어로영화에 열광하는 인물들이라는 건 진짜다. 극강의 아마추어리즘을 무기 삼아 웃음 펀치를 날리는 <어둔 밤>은 사실 심찬양 감독의 영화를 향한 애정 고백에 가까워 보인다.

-<어둔 밤>은 201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을 수상한 화제작이었다. 개봉 후 영화에 대한 좋은 평가나 흥행을 기대했을 텐데, 영화가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

=개봉관을 잡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개봉 첫주부터 ‘게임이 끝났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냉혹한 현실을 경험하니 좀 슬펐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다. <어둔 밤>의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이야기는 어디서 출발한 건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 개봉일에 시작됐다. 밤새워 학교에서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인터스텔라>의 새벽 첫 상영 일정을 확인하고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갔다. 학교가 외진 곳에 있어서 차를 타고 한참 가야 했는데, 상영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속도를 내며 그 밤에 극장으로 향하던 순간이 이상하게 즐거웠다. 영화가 뭐기에 이렇게 신나는 걸까, 그때의 그 맑은 에너지는 뭘까, 이런 게 덕후인가 하는 생각들이 스쳐갔다. 당시의 에너지를 영화에 잘 담아내고 싶었고, 함께한 친구들이 영화에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쓴 게 <어둔 밤>의 1부 시나리오였다. 첫 촬영 때만 해도 ‘이게 영화가 될까’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촬영하면서 세상에 없던 뭔가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부터 장편을 계획하고 만든 건 아니다. 영화 속 1부에 해당하는 단편 <회상, 어둔 밤>을 만든 뒤, 2부와 3부를 찍어 장편으로 확장했다.

=애초 <회상, 어둔 밤>을 세상에 선보일 생각은 없었다. 우리끼리 재밌게 찍고 즐기자, 그게 이 영화의 시작이었으니까.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회상, 어둔 밤>이 201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그 후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회상, 어둔 밤>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영화 속 친구들이라도 영화를 완성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뒷이야기를 썼다.

-1부와 2부는 ‘리그 오브 쉐도우’ 멤버들이 영화 만드는 과정을 담은 메이킹 영상이다. 3부에선 이들이 만든 영화 <어둔 밤 리턴즈>가 상영되는데, <어둔 밤 리턴즈>는 어떤 모양새의 영화이길 바랐나.

=크리스토퍼 놀란과 히어로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면 이런 영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찍었다. 1부와 2부에서 뿌려놓은 떡밥들을 수거하면서 컨텍스트의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영화가 이상할 순 있지만 후지지는 않았으면 했다.

-“실존 인물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음”이라는 자막이 뜨지만 모든 캐릭터의 대사에 영화감독 심찬양의 생각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 모든 캐릭터에 내 20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나 혹은 우리의 모습이,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안 감독과 심 피디의 대사 대부분은 영화계 종사자 혹은 시네필의 허세로 채워져 있다. 허세 가득한 풍자적 대사들은 어떻게 탄생했나.

=많은 부분 친구들의 창의력에 기댔다. 내가 1을 던져주면 친구들이 3을 내놓는 식이었다. 캐릭터가 잡히기 시작한 뒤부터 친구들이 알아서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걸 보면서 나는 감독인가, 다큐멘터리스트인가 하는 고민도 했다.

-엔딩 크레딧의 ‘스페셜 땡스 투’ 리스트는 크리스천 베일로 시작해 크리스토퍼 놀란과 친구들로 끝난다. 중간엔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조승우의 이름도 있다.

=영화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 인물들의 이름을 모두 넣었다. 아무도 레퍼런스라고 생각지 않을지 모르지만 레퍼런스가 된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송강호와 최민식은 이 영화의 존재를 알까.

=모르지 않을까. (웃음) 나중에 성공해서 이 크레딧을 캡처해서 보내고 싶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근황도 궁금하다.

=슬레이트 치던 옥자는 MBC에 AD로 들어갔다가 지금은 <복면가왕> 막내 PD가 됐다. 가끔 누가 가왕이냐고 물어보는데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웃음) 빌런 선배 역의 이재원 선배는 로스쿨에 들어가 법조인으로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 법정영화에 변호사로 캐스팅해달라고 하더라. 촬영을 전공한 조빙은 나의 다음 영화 촬영을 맡게 될 것 같고, 상미넴은 배우가 되기 위해 할리우드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뭔가.

=10년 뒤에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영화였으면 좋겠다. 부끄러운 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솔직한 영화를 찍고 싶다. 최근엔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고 있는데, 뮤직비디오 작업은 폴 토머스 앤더슨처럼 간간이 하지 않을까 싶고(웃음), 현재 차기작으로 음악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 Review_ 영화감상 동아리 ‘리그 오브 쉐도우’ 멤버 안 감독(송의성), 심 피디(심정용) 등은 예비군이 주인공인 히어로영화 <어둔 밤>(Dark Night)을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조빙(조병훈)은 이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하지만 영화가 완성되기도 전에 이들은 군 입대를 하고 <어둔 밤> 제작은 중단된다. 시간이 흘러 이들의 후배인 상미넴(김상훈)은 <어둔 밤 리턴즈>를 찍기로 한다. 복학생이 된 선배들도 영화에 참여한다. 심찬양 감독의 <어둔 밤>은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를 소재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와 2부는 영화 만드는 과정을 담은 메이킹 영상이고, 3부는 이들이 완성한 영화 속 영화다. 모든 것이 아마추어들의 어설픈 장난 같아 보이지만 실은 의도된 촬영이고 연기다. “언젠간 답을 찾겠지”라며 덕력을 뽐내는 이들이 귀엽고 짠하고 멋지다. 2017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을 수상했다.

● 추천평_ 김현수 덕후의 심장을 때린다. ‘용아맥’ 상영을 원한다! ★★★★ / 이용철 클라이맥스는 ‘그 영화’만큼 감격스럽다 ★★★☆ / 임수연 윗세대의 시선이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로 담아낸 청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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