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 - 부동산 나라에서 사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
2019-04-12
글 : 김현수
사진 : 오계옥

마민지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버블 패밀리>는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 등에서 공개됐을 당시부터 많은 화제를 모으고 여러 피칭 프로그램에서 수상하며 감각적인 신인감독의 탄생을 예고했다. 하지만 개봉까지 1년 넘는 시간이 걸렸고, 개봉 성적은 전국 관객 2천명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버블 패밀리>는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영화다. 21세기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과연 부동산의 유혹을 떨쳐내고 훨훨 날아다니며 살 수 있을까. 오늘날의 부동산은 누군가의 욕망을 부추기는 블랙홀이기도 하다. 한때 땅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또 그 땅 때문에 고생해야 했던 한 가족의 욕망이 기록된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 개봉 이후 마민지 감독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 다시 만남을 청했다.

-지난해 12월 20일 <버블 패밀리> 개봉 이후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개봉 스트레스 때문인지 대상포진에 걸려 한동안 고생했다. (웃음) 다행히 지금은 병이 거의 완치됐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리틀 노마드>를 몽골에서 촬영하고 왔다. 지난 인터뷰에서 <회색 도시로 가는 길>이라고 소개했는데 제목을 바꿨다.

-지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의사가 되는 게 꿈인 몽골 유목민 마을의 한 소녀가 홀로 도시 울란바토르에 와서 적응해가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IMF 외환위기와 부동산 문제로 인한 가족의 갈등을 다룬 감독의 차기작이 몽골 유목민 마을 소녀의 도시 상경기라니, 두 작품 사이에서 어떤 연관성을 찾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지난해 하반기 연출하기로 결정한 뒤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한국 감독이 몽골 소녀의 이야기를 찍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가. 하지만 대가족 단위로 살던 소녀가 마을의 게르를 벗어나 도시로 이주해 홀로 정착하는 이야기라는 점, 처음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끽한다는 점에서 공감했다. 무엇보다 프로듀서가 기획한 작품이기에 나는 연출에만 신경 쓰면 되는 작업이기도 했다. 프랑스 제작사는 처음부터 아시아 감독이 연출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버블 패밀리> 개봉 당시 부모님도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셨나.

=개봉 때 극장에 초대했고 관객과의 대화(GV)가 예정된 회차였는데 아버지는 영화 끝나자마자 가버리셨다. (웃음) 그래서 사회를 보던 배급사 대표님이 난감해하셨고. 영화 자체를 민망해서 못 보신 건 아니고 이전에도 관람하셨는데 그날은 유독 어머니와 함께 보기가 힘드셨나 보다. 어머니는 그 이후에도 N차 관람을 하셨다. 어떤 관객 후기를 읽다가 영화 끝나자마자 한 중년 여성이 ‘물개 박수’를 쳤다는 목격담을 봤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나중에 인디스페이스 국장님하고도 친해져서 인사까지 나누시더라.

-개봉 이후에 영화에 관해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 있나.

=평소에도 자주 나눈다. 어머니가 가끔 땅 이야기를 슬쩍 꺼내시는데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버블 패밀리> 한번 더 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극장개봉을 거치면서 관객과 만나서 들은 이야기 중 기억나는 반응이 있다면.

=영화제 관객과 극장개봉 때 관객층이 달라서 그 반응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독립영화를 비교적 많이 접한 분들은 어느 정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데 다큐멘터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실제 가족의 일상을 찍은 거냐고 묻기도 했다. 관객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가 빚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짚는 영화의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버블 패밀리>를 완성하면서 연출자로서 관객이 왜곡해서 받아들일까봐 염려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마지막 장면에 내가 땅을 보러 가서 좋아하는 순간이 담겼는데, 과연 내 의도가 잘 전달될지 의문을 갖긴 했다. 나는 그 순간에 어떤 안정감이라고 해야 할까, 미래가 보장된 것 같은 느낌이 주는 내 안의 욕망을 발견했었다. 연출적으로 그 순간을 지연시켜 관객과 함께 한번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끝맺었으면 어땠을까. 실제로 어느 리뷰에서 감독도 부모님의 시선에 동조하며 끝낸다고 비판하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스토리상의 한계이긴 한데 가족주의로 봉합되는 것처럼 끝냈던 점이 아쉽다.

-<버블 패밀리> 이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으로 성북동의 북정마을 도시 재생사업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룬 <성북동 일기>(2013)를 만들었다. 도시라는 공간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최근에 주목하는 지역 혹은 이슈는 무엇인가.

=최근 관심 있는 주제는 ‘건강’이다. (웃음) 영화 만들면서 건강을 잃었다. 얼마 전에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참석했는데 한 세미나에서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모여서 영화 찍다 생긴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정신건강을 지키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더라. 주변 감독들과 만나면 몸의 어디가 망가졌는가 하는 이야기부터 한다. 조현병과 관련된 사회 이슈도 계속 터져나오는 상황 아닌가.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질병을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있다.

● Review_ 마민지 감독의 부모님은 1980년대에 ‘집장사’로 큰돈을 벌었다. 서울의 아파트 개발 붐을 타고 집을 팔아 또 다른 집 사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엄청난 차익이 발생해 마민지 감독의 가족 재산은 점점 불어났고 자연스레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 지금처럼 셀카나 브이로그 같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그녀의 어머니는 일상을 캠코더로 녹화했다. 어머니의 캠코더 영상에 담긴 어린 시절의 마민지 감독은 좋은 옷을 입고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유치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마민지 감독은 자신의 부모님이 어떻게 부동산으로 성공했다가 다시 부동산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됐는지를 질문한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가족사를 카메라에 기록한 사적다큐멘터리로서 <버블 패밀리>는 한 가족의 치부를 드러냄과 동시에 IMF 외환위기 전후로 무너져내린 한국 사회 중산층 신화의 민낯을 드러낸다.

● 추천평_ 김현수 땅을 사느라 땅에서 편히 살지 못하는 아이러니 ★★★ / 박평식 버블 소사이어티 ★★★ / 송형국 ‘땅땅땅 돈돈돈 유전자’를 밝히는 게놈 지적도 ★★★ / 이용철 IMF의 교훈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임을… ★★★ / 이주현 다이내믹 대한민국 다이내믹 패밀리 ★★★

이어지는 기사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