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칠곡 가시나들> 김재환 감독, “나이가 들면 설렘과 외로움의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다”
2019-06-21
글 : 김정현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오늘도 경북 칠곡군 약목면의 할머니들은 더듬더듬 글자를 읽고, 삐뚤빼뚤 글씨를 쓴다. 이제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일곱 할머니의 일상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만나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칠곡 가시나들>은 할머니들의 일상을 따라가며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노년의 모습을 담아낸다. <트루맛쇼>(2011)를 시작으로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날카롭고 도발적으로 건드리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김재환 감독이 이전과 달리 따뜻한 톤으로 전하는 ‘칠곡 가시나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이다.

-그동안 작업했던 영화와는 무척 다른 결의 영화다.

=어떤 분은 제목을 듣더니 이번에는 칠곡에서 뭘 고발하느냐고 묻더라. 내 이미지가 어떤지를 새삼 느꼈다. 하지만 원래 이렇게 재밌고, 따뜻하고, 발랄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의외가 아닌 영화다. 사실 이런 톤과 더 잘 맞는다. 아무도 믿지는 않지만. (웃음)

-노년의 이야기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특별히 주목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나.

=사실 이런 소재를 다루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노년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 그 이야기가 시골에서 펼쳐진다고 하면 수많은 휴먼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되지 않나. 새로움이 없는 이야기로 느껴지기 쉽다.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시선을 보여줄지를 고민했다. <칠곡 가시나들>은 한줄로 설명하자면 ‘재미있게 나이 듦’에 대한 영화다. 노년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잘 포착하지 못했던 이들의 설렘에 주목하고자 했다. 설렘이라는 렌즈로 할머니들의 일상을 구성하면 새로운 것을 건져 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설렘이라는 감정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

=할머니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다들 왜 저렇게 TV를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외로움 때문인 것 같더라. 누군가가 같이 있다는 느낌을 줄 소음이 필요하셨던 거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이가 들면 설렘과 외로움의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외로움은 디폴트일 수밖에 없다. 설렘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가 행복의 열쇠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을 줄이려는 시도만으로는 ‘재미있게 나이 듦’이 가능하지 않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욕망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분들에게도 설렘이 필요하다.

-곽두조 할머니가 노래자랑에 지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젊을 때부터 정말 노래를 좋아하셨던 분이다. 주변에서 다들 지원하라고 독려한 끝에 큰 결심을 하고 지원하셨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드시고 갈 만큼 긴장을 많이 했는데 결국 박자를 놓치셨다. 간절히 원하셨던 일이고, 도전할 용기를 얻어 나가셨지만 처절히 실패하셨다. 제작진도 이런 결과를 생각지 않았고, 할머니도 상처를 많이 받으셨지만, 그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고 해서 바로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니까. 영화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이듬해에 다시 도전해서 결국 본선에 진출했고, 특별상도 타셨다. 할머니가 정말 기뻐하셨고 그 뒤 몇년은 젊어지신 것처럼 생활하셨다. ‘도전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경험이 저렇게 사람을 생기 넘치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 전체에서 할머니들이 직접 쓴 시가 인상적으로 활용된다.

=할머니들이 제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계시는데 그런 캐릭터들은 글에 가장 잘 드러난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일상과 시가 정말 잘 맞았다. 반 정도는 촬영하기 전에 쓰셨던 그림일기에서 찾았고 나머지는 촬영 중에 쓰신 것들에서 찾았다. 할머니들의 순수한 표현이 좋았다. 어린아이의 것처럼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이라 일상의 모습과 잘 어우러졌던 것 같다.

-글을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할머니들이 떨리는 손으로 느릿느릿 글을 쓰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경이롭다. 할머니들이 새로운 글자를 알게 되면 굉장히 설레어 하신다. 다 잊어버렸지만 아마 우리도 그랬을 것이다. 글자가 처음 우리에게 들어오고 세상에는 새로운 글자가 가득한 시기, 새로움과 설렘이 가득했던 시기가 우리에게도 있었을 거다. 할머니들은 아흔이 다 된 연세에 우리는 이미 잃어버린 것을 경험하시는 거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개봉 당시 CGV와 메가박스 상영을 거부했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일한 거고, 그래서 나도 내가 해야 할 말을 한 거다. 사실 이렇게 문제제기를 한다고 당장 무언가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할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이렇게 장렬하게 전사해주는 게 내 역할이 아닌가 싶었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얼마 전 <칠곡 가시나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 <가시나들>이 파일럿 방송을 마쳤다. 단순히 모티브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대표로 있는 제작사 단유필름에서 외주로 제작을 맡아 작업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칠곡 가시나들>의 느낌을 살린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과 만나보자는 제안이 와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방송사에서 제안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는 권성민 MBC PD와 함께하게 됐다. 일반인이 출연하는 만큼 만드는 동안 어떤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송은 항상 그 현장에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런 후유증을 남기지 않는 것을 계속 신경 썼다. 마지막까지 자극적인 것을 좇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Review_ <칠곡 가시나들>의 카메라가 따라가는 대상은 늦게 찾아온 배움의 기회를 만끽 중인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2리 할머니들이다. 한글 교실을 중심으로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할머니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나이 듦의 무게와 슬픔에 잠길 겨를이 없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삶에 집중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러한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는 할머니들의 언어 역시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순수하면서도 기발한 언어로 가득한 할머니들의 시는 영화 곳곳에 직접 삽입되어 할머니들의 삶과 어우러진다.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쓴 시는 할머니들의 일상과 결합하면서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언어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도록 이끈다.

● 추천평_ 김정현 서투르지만 아름다운 할머니들의 언어만으로도 ★★★ / 이용철 다큐 기인 김재환, 이번엔 노년의 설렘이다 ★★★☆ / 이주현 세종대왕도 놀랄 할머니들의 반짝이는 시어 ★★★ / 이화정 아내, 어머니, 할머니라는 ‘여성’을 떼고, 흥겹게 노년 라이프 ★★★☆ / 허남웅 칠곡에 약산 할매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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