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B급 며느리> 선호빈 감독 - 내 행동도 많이 변했다
2019-04-19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지난해 초 개봉한 <B급 며느리>는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는 독립영화계에 반가운 이례였다. 선호빈 감독의 부인 진영과 그의 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다룬 사적 다큐멘터리가 관객수 2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싸울 때 필요한 증거 수집을 위해 찍기 시작한 영상은 동료들의 권유로 영화가 됐고, 여성 인권에 관심 높은 최근의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바지런히 미디어에 소환됐다.” 지난 1년간 방송국 다니랴, 일간지와 인터뷰하랴 유례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던 선호빈 감독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최근 독립영화 중 <B급 며느리>는 꽤 흥행한 축에 속한다. 미디어에서도 가부장제에 반격을 든 <B급 며느리>를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자주 소환했다. 감독으로서 느낀 이 시장의 가능성과 한계가 있었겠다.

=<82년생 김지영>이 밑밥을 깔고, 웹툰 <며느라기>와 함께 조명받으면서 분위기를 탄 것 같다. 다큐멘터리 감독끼리는 되게 자랑하는 스코어지만, 사실 개봉 초기에는 관객수를 확인하면서 좀 비참했다. 아침 7시 30분에 영화를 튼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40개관 정도에 배정되면 극장이 우리 영화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알 수 있지 않나. 현실적으로 100개관 정도 잡히면 승부해볼 만하지만, 그 미만이면 개봉을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다행히 설 때 확대 개봉하면서 관객수가 2만명까지 늘어났는데, 극장 관객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지난 추석 IPTV 수익 정산이 들어온 이후부터 돈을 벌었다. 독립영화가 좀 낯설어서 그렇지 어느 정도 플랫폼에 태워주면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이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시대도 아니지 않나. 요새 동료 감독들하고 넷플릭스를 뚫어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자주한다.

-개봉 이후 어머니와 진영씨의 반응은 어떤가.

=엄마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거 다 연기라고 연기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웃음) 그리고 TV에 나오는 걸 기본적으로 안 좋아하셔서 방송이 예정되어 있으면 그날 그 채널은 틀지 말라고 아빠에게 미리 알려드린다. 진영이는 워낙 이런 거에 개의치 않는 성격이고, 아직도 명절이 되면 언론사에서 전화가 온다. 최근에 여성가족부에서 성차별적 가족 호칭을 개선하겠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나. 그때 진영이가 많이 불려 다녔다. 신기하긴 하다. 영화가 처음 공개될 때만 해도 시동생에게 반말하는 걸 보고 “그건 좀 아니지”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2년 만에 이런 변화가 있는 걸 보면서 진영이에게 “야, 네 영향이 좀 있었나 보다”라고 한다. (웃음)

-그 반대 진영에서 여자들이 무슨 성차별을 받냐며 분노하는 이들도 있지 않나. 관객마다 영화를 받아들이는 온도 차가 있었을 듯하다.

=많은 분야에서 합리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유독 이 문제는 눈 감고들 살아온 것 같다. 다큐멘터리 진영에 급진적인 선배들이 정말 많다. 삼성과 싸우고, 4대강 문제에 목소리 내고. 그런데 집안 얘기만 나오면 “야, 참아. 적당히 어머니 맞춰줘야 해”라고 한다. 진영이가 그런 문제를 건드린 거다. <B급 며느리>를 본 관객의 이해도를 사사분면에 나눠 그릴 수 있다. 기혼 여성이 베스트 관객이고, 가장 영화를 이해를 못하는 관객은 미혼 남성이다. 미혼 여성들도 정말 저런 시어머니가 있느냐고, 왜 부부가 이혼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마지막 결말은 나 역시 결국 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40대 이상 기혼자는 진영이 시댁에 다시 들어간 후 어떻게 됐느냐고 굳이 묻지 않는다. 안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니까.

-<B급 며느리>를 만들면서, 그리고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반성한 부분이 있나.

=당연하다. 내 행동을 다시 보면 내가 잘못했네 정도를 넘어서서 ‘쟤는 바보인가? 왜 저렇게 눈치가 없지?’ 싶다. 덕분에 행동도 많이 변했다. 원래 남자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위치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그러다 역으로 자기가 당해봐야 비로소 인지한다. 진영이가 명절 때 안 간다고 해서 혼자 친척집에 갔는데, 다들 나를 괄시하더라. 난 그동안 친척들이 날 사랑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애정을 박탈당하고 눈칫밥을 먹어본 이후에야 느낄 수 있다. 여자들은 이런 걸 훨씬 어렸을 때부터 감지했는데 난 36살 먹어서 안 거지. 그리고 진영이가 대드니까 변한 게 있지 않나. 그걸 보고 ‘뭐야, 받아치니까 별거 없네?’ 싶었다. 그래서 요새는 내가 부모님과 많이 싸운다.

-준비 중인 차기작은.

=가족 얘기는 하기 싫다. 내 가족의 눈물과 고통을 편집하다 보니 너무 힘들더라. 100% 정해진 건 없고, 메인으로 액션 장르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긴 한데 너무 어렵다. 다큐멘터리 기획도 여러 개 생각하다가 잠시 접은 것도 있다. 지난해에는 60년대 말 김현옥 전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이 도시에 대해 리서치를 많이 했다. 고가도로나 지하차도처럼 ‘저 흉물스러운 건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싶은 게 다 그 사람 작품이다. 지금도 다른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틈틈이 메모하고 있다.

● Review_ “시어머니랑 한바탕 한 바람에 명절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추석 때 안 갔다. 완벽한 추석을 보냈다.” 20대 초반에 1차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부모의 애정을 듬뿍 받으며 살았던 진영은 덜컥 혼전 임신을 하고 선호빈 감독과 결혼한다. 그렇게 생판 모르다가 가족으로 엮이게 된 시엄마와 매순간 부딪히고 있다. 진영은 속으로 가슴앓이하는 며느리가 아닌, 할 말은 하고 옳지 않은 일에 투쟁하는 여성이다. 그는 시동생에게 존댓말을 할 생각이 없으며, 시엄마에게만 갔다 오면 아들이 자신이 입혀준 옷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너무 열받는다. 반면 며느리가 아이스크림 먹고 아이스커피를 쪽쪽 빨아 먹는 모습도 싫다는 시엄마는 그가 B급도 못되는 F급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고부갈등의 본질은 여자 대 여자의 싸움이 아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악습에 뿌리를 뒀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남성 감독이 바라본 생생한 고부갈등 리포트이자, 자기반성의 기록.

● 추천평_ 김성훈 아내 앞에선 아내 편, 어머니 앞에선 어머니 편, 잊지마세요 ★★★ / 박평식 힘내라 며느리, 힘 빼셔 어머니, 잠자게 아들 ★★★ / 장영엽 이게 다 누구 때문일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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