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22> 김원동 제작자 - 위안부 소재 창작물에 왜 벌써 피로감을 호소하는가
2019-04-19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대표

22. 2014년 당시 중국에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여성의 수를 의미하는 숫자다. 중국 신인감독 궈커는 이 22명의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조명한 그의 첫 다큐멘터리 <22>를 통해 중국 사회에서 한번도 가시화된 적 없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펑샤오강 감독, 배우 장신이 등 영향력 있는 중국 영화인들의 지지를 받은 이 작품은 중국에서만 292억원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크게 주목받았다. 그런데 <22>를 제작한 이는 중국인이 아닌,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의 김원동 대표다. 영화 <소리굽쇠>(2014), 방송 다큐멘터리 <소녀를 만나다>(2014)를 제작한 그는 오랜 시간 대중에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방식을 고민해왔다. 중국에서 <22>의 후속작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작업 중인 궈커 감독을 대신해 김원동 제작자에게 <22>의 제작 과정과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22> 이전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영화 <소리굽쇠>, 방송 다큐 <소녀를 만나다>를 제작했다.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2011년, 공익적인 소재의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위안부 피해자들을 소재로 한 극영화 <소리굽쇠>를 기획하게 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에 대해 알아갈수록 쉽게 벗어날 수가 없더라. <소리굽쇠> 이후 위안부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방송 다큐멘터리 <소녀를 만나다>를 기획하게 됐고, 이 작품의 기획 과정에서 만난 위안부 피해자인 박차순, 이수단 할머니를 계기로 훗날 <22>의 감독이 된 중국의 궈커 감독을 만났다.

-<22>는 중국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을 한·중 합작으로 만들게 된 계기는.

=<22>를 기획하며 궈커 감독이 카메라에 담고자 했던 중국인 생존자 할머니들 중에 박차순, 이수단 할머니가 있었다. 우리 입장에서 두 분은 중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해 중국으로 국적이 편입된 한국인이지만, 궈커 감독의 입장에서 두분은 중국 국적을 가진 위안부 피해 여성이었던 거다. 이처럼 각자의 프로젝트를 팔로하던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다. 베이징에서 궈커 감독과 만나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중국 공동의 과거이기 때문에 ‘우리가 힘을 합쳐 같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라고 의견을 모았다.

-한·중 스탭들의 역할은 어떻게 분담했나.

=한국이 제작비를 지원하고 실질적인 촬영은 중국 스탭들이 전담했다. 우리가 프로젝트에 합류할 당시 궈커 감독은 이미 1차 촬영을 마치고 제작비를 모두 소진해 돈을 구하러 다니는 상황이었다. 신인감독이라 제작비를 운용하는 데 서툴렀던 것 같지만, 찍어놓은 영상을 보니 좋더라. 그래서 우리가 진행하려던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남은 제작비를 모두 궈커 감독의 영화에 투자했다. 대신 우리가 팔로하려 했던 박차순, 이수단 할머니의 출연 분량은 확실하게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극중 22명의 할머니가 언급되지만 그분들 중 위안부 피해자로 증언에 참여하는 사람은 일부다. 영화는 모습을 드러내길 원치 않는 할머니들 사연도 담담하게 보여준다.

=나와 궈커 감독이 동의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증언에 대한 어떤 설득과 강요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간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제작진이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한방’을 이끌어내기 위해 할머니들의 트라우마를 고려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과거 사연을 질문하며 그분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패턴이 지속되는 게 관객에게도 결코 좋은 흐름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궈커 감독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할머니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현대 중국 사회의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거라고 생각했다.

-2014년 당시 중국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22명이었으나 영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2018년 7월에는 7명의 생존자만이 남았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22>에 출연한 분들 중에는 현재 6명의 할머니가 살아 계신다. 긍정적인 소식은 영화가 개봉한 뒤 9명의 할머니들이 추가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 영화 이전에는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22>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재가 가시화된 만큼 앞으로 중국 내 생존자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22>는 2017년 여름 중국에서 두달간 55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92억원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반면 2018년 여름 국내 개봉 당시 한국 극장가에서는 외면받았다(관객수 2438명).

=나는 중국에서 크게 잘되었으니 한국에서도 흥행할 거라는 주변의 시각에 줄곧 반대해왔다. 위안부 소재가 중국에서는 ‘새로운 이야기’, 한국 관객에게 있어서는 ‘또 그 얘기’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두 나라간의 간극을 설명해준다고 본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가 700편 가까이 만들어졌음에도 전세계 통틀어 30여편도 채 안 되는 위안부 피해자 관련 영화에 관객이 벌써부터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를 포함해 영화 제작자, 사회운동하시는 분들이 돌이켜봐야 할 것 같다.

● Review_ 영화는 2014년 중국 산시성 위현. 장가이샹 할머니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중국에 거주하고 있던 22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22>의 제작진은 이처럼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행방을 좇아 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기록한다. 너무 오랜시간 한국을 떠나 있어 한국말은 서툴지만 여전히 <아리랑> 곡조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박차순(중국 이름 마오인메이) 할머니를 비롯해 공산 유격대로 활동했던 린아이란 할머니, 자신을 숨겨준 부부 중 남편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봐야 했던 리메이진 할머니의 사연 등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창작자의 별다른 개입 없이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과거와 더불어 주변을 포용하고 일상을 살아내는 그들의 현재를 담담하게 조명함으로써 시련으로부터 기어코 살아남은 생존 여성들의 생명력과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 추천평_ 김소미 조용한 응시의 힘. 끝까지 잊지 않겠다는 약속 ★★★ / 장영엽 있는 그대로의 ‘허스토리’ ★★★

이어지는 기사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