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김소영 감독 - 영화를 통해 세상을 만난다는 체험
2019-06-21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을 그리는 이야기다.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기다리는 곳>(2014),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2016)와 함께 김소영 감독의 망명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이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보다 먼저 찍었다.-편집자). 한국전쟁 때 고향인 북한을 떠나 소련 모스크바로 유학왔다가 정치적 이유로 중앙아시아에 뿔뿔이 흩어진 청춘 8명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종파사건, 중앙아시아 이주 등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관통해온 이들의 청춘과 삶은 굴곡 많은 동시에 쓸쓸하다.

-모스크바 8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어떤 감흥이 들었나.

=그중 한명인 최국인 감독님을 뵌 게 2013년이었다. 그가 들려준 사연이 매우 ‘압도적’이었다. 굴곡 많은 삶을 산 사람을 본 적 없었던 까닭에 무슨 얘기부터 여쭤봐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다.

-압도적이라면 인민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워 당으로부터 ‘알짜 빨갱이’라는 신뢰를 얻은 덕분에 소련에 갔다가 고향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여정을 뜻하는 건가.

=그렇다. 게다가 북한 최초의 극영화 <내 고향>(1949)에 배우로 출연했고, 조선의용군 출신인 데다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중앙아시아에서 수많은 영화를 찍기도 했고.

-그를 어떻게 알게 됐나.

=평소 고려인의 삶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마침 한국영화사 총서 토대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소련/러시아, 중앙아시아, 대만 등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지역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때 맨처음 한 일이 대만영상자료원에서 김수용 감독의 1965년작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발굴해 디지털로 복원한 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한 거였다. 그렇게 자료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최국인 감독님을 찾게 됐다.

-최국인 감독이 선뜻 촬영을 허락하던가.

=당시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을 자주 오가느라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아파트 밖에서 기다렸고, 병원에 직접 모셔다 드리기도 했다.

-전작인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가 여성 고려인 예술가들을 그렸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 8명은 모두 남성이다.

=순서상으로는 이 영화가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보다 먼저 찍었다. 얘기한 대로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이야기이지 않나.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용기를 얻은 건, 전작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기다리는 곳>에서 체격이 큰 김 알렉스와 함께 작업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의도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비극적이고 체격이 큰 남자들을 불러온 것 같다.

-8명의 사연이 모두 극적이라 웬만한 장르영화보다 흥미진진했다.

=영화가 개봉한 뒤 들었던 최악의 평 중 하나는 이 영화가 인터뷰 모음집이라는 거다. (웃음) 게을렀나보다, 반성하고. 참 좋은 소재인데 막상 다큐멘터리로 만들려니 증언해줄 만한 사람들은 돌아가셨고, 영화를 찍다가 돌아가시기도 하고(최국인 선생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세상을 떠났다.-편집자), 모두 남자들인 데다 말하는 방식이 웅변조이지 않나. 감독으로서 여러모로 도전이었다.

-그중에서도 조선의용군 계열로, 훗날 김일성으로부터 숙청당한 연안파 이야기를 북한사람(최국인) 입을 통해 듣는 건 매우 강렬했는데.

=연안파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듣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그 이야기는 큰 충격이었다. 조선희 작가의 소설 <세 여자> 속 주인공 중 한명이자 연안파에 숙청당할 때 살아남은 허정숙에 관심이 많았고, 친할아버지가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출신이기도 해서 어릴 때부터 종파 문제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최국인 감독님으로부터 연안파 얘기가 술술 나오자 진짜 ‘마주침’ 같은 순간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한 경험이 없었다면 이들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만난다는 체험이 작용하면서 그러한 방식을 중심으로 세상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여러 정치적 이유 때문에 고향(북한) 땅을 다시 밟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낯선 중앙아시아 대륙에서 살아온 삶과 그곳에서 겪은 일들이 어마어마하더라.

=그건 청춘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붉은 청춘’을 제목으로 넣은 것도 그래서다. 평양에서 복잡한 정치 상황을 정리해줄 테니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국땅에 남기로 한 한진 선생의 결정은 정말 대단했고. 그뿐만 아니라 8진 대부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한반도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관통해 왔는데 아마도 그러한 시간과 경험들이 이들을 만든 시대정신이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유일한 여성은 한진 선생과 결혼한 지니이다 여사뿐이다. 8진에 속하지 않지만 그가 들려주는 한진 선생에 대한 증언이 이야기를 한데 아우르는데.

=한진 선생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 이야기도 가장 잘하신다. 내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전시회를 연 적 있는데 그때도 전시회를 찾아와 한진 선생에 대한 자료를 주셨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한진 선생에 대한 추모 사업을 하고 계셨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프로듀서, 촬영감독 등 스탭들과 함께 세편 정도 찍어야 연구 주제를 관객에게 충실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망명 3부작으로 출발했는데, 지금까지 찍은 작품이 단편을 포함해 총 8편이나 되더라. (웃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극영화다.

-영화를 극장에서만 보는 시대는 지났는데 최근 벌어지는 플랫폼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그러잖아도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가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 관객과의 대화(GV) 문화가 많아졌고, GV했을 때 영화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가 높아졌다고. 그런 맥락에서 히든 픽처스 사업은 실험적이고 좋은 시도인 것 같다.

● Review_ 한국전쟁 때 고향인 북한을 떠나 모스크바 유학길에 오른 청춘들이 있었다. 총 8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모스크바 8진’이라 불린다.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워 ‘알짜 빨갱이’라는 신뢰를 얻어 떠날 수 있었지만 현실은 그들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7년, 북한에서 종파사건이 일어나고 김일성은 연안파, 소련파 등 반대세력들을 숙청했다.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에서 공부하던 청년 8명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낯선 소련 땅에 발붙일 수도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카메라는 모스크바 8진 중에서 살아 있는 최국인 감독, 김종훈 촬영감독, 한진 선생과 결혼한 지나이다 여사의 증언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유학 시절 생활, 종파사건 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까움, 낯선 땅에서의 러브 스토리, 중앙아시아에서 영화감독으로서 새로운 도전 등 굴곡 많은 이들의 인생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쓸쓸하다.

● 추천평_ 김성훈 압도적이면서도 쓸쓸한 떠돌이 삶 ★★★☆ / 이화정 디아스포라, 묻혀버린 역사와 사람을 찾아내는 세심한 탐구. 뜨겁고 멋진 이들과의 만남 ★★★☆ / 임수연 우리가 몰랐던 디아스포라에 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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