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초인> 서은영 감독 - 문학이 고리가 된 청춘 성장담
2019-02-08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면 다 초인이래.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극복하면 우리 삶은 변화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게 된대.” 수현(채서진)과 도현(김정현), <초인>의 두 주인공은 니체를 인용하며 대화를 나눈다. 성장하는 청춘이 주인공이었던 <초인>이 개봉한 지 3년이 지났다. 서은영 감독은 차기작 <고백>의 후반작업 중이다.

-이 영화는 <이방인>의 뫼르소와 <데미안>의 데미안이 만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들었다.

=뫼르소와 데미안은 상반된 캐릭터이지 않나. ‘둘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수현이 뫼르소, 도현이 데미안인가.

=시나리오 초고는 수현과 세영, 두 친구의 사연을 그린, 매우 어두운 이야기였다. 원래 둘은 소년이라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문학에 집착하게 되는 사연을 입히는 과정에서 수현과 세영은 소녀로 바뀌었고,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인 도현이 새로 생겼다. 덕분에 이야기가 초고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청춘 성장담에 관심이 많나보다.

=평소 청춘물을 좋아하고, 모든 영화는 성장담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는 청춘물을 통해 극한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려는 모습을 기대한다. 자신이 원하는 걸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장애물을 뛰어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게 청춘물의 가장 큰 매력이다.

-김정현과 채서진의 어떤 면모가 도현과 수현에 각각 어울린다고 판단했나.

=영상원 재학 시절 연출했던 단편영화 <살인의 시작>(2014)에서 (김)정현씨가 주인공을 맡아 함께 작업한 적 있다. 첫 번째 살인을 하게 된 고등학생을 연기했는데 그와의 작업이 만족스러웠다. 수현 역할을 할 배우를 찾기 위해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채)서진씨가 보여준 감정이 좋았다. 원래 연출 의도와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영화와 어울리는 선에서 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도현이 하는 운동이 왜 체조인가.

=체조는 몸을 최대치로 이용하는 종목이자 규칙을 따라 정확한 동작을 구사해야 점수를 따낼 수 있는 스포츠이다. 그게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청춘의 성장과 맞닿아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체조 선수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이 하는 걸 직접 보니 아름답고, 역동적이며, 인간이 자신의 몸을 이렇게까지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새로웠다.

-도현과 수현을 이어주는 고리가 문학작품이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육사의 <광야> 같은 시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돈키호테> <책도둑> 등 여러 소설이 영화에 등장하는데.

=책이 등장하는 한국영화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책 내용을 깊이 다루면 영화가 지루해질 수 있어 책이 양념처럼 기능하면 되겠다 싶었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나 <책도둑>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고, <광야>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10대 청소년들이 교과서에서 접해 익숙한 작품들이다.

-이공계 출신으로 반도체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이력이 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회사원 시절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일찍 퇴근하면 항상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고전영화들을 볼 정도로 말이다. 휴가를 내고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회사에서 급한 일을 처리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예매했던 표를 버린 뒤 막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결국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했다.

-첫 장편영화를 개봉해보니 어땠나.

=영상원을 졸업하고 장편영화를 안 찍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쓴 이야기가 <초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뒤 바로 다음해에 개봉까지 해 운이 좋았다. 관객이 많이 안 들었지만 첫 영화가 개봉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개봉 이후 친구들이 영화 개봉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예산 영화 시장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선보일 수 있게 된 건 좋은 시도인 것 같아 감사하다.

-차기작인 <고백>은 어떤 영화인가.

=이상한 유괴사건을 그린 영화로,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현재 후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설이 지나면 편집본이 나올 것 같다.

● Review_ 도현(김정현)은 고등학교 체조 선수다. 싸움을 한 벌로 도서관에서 40시간 동안 사회봉사를 하게 된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서영화)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또래 소녀 수현(채서진)을 만난다.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은 이후 도서관으로 이어진다. 도서관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함께 책을 읽으며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알아간다.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고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라고 말했듯이 수현은 도현에게 “너, 초인이 돼라”고 말한다. 과거 상처도, 처한 상황도 각기 다른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자각하고, 현실을 극복하려고 한다. 청춘 성장담으로 전형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현실을 피하지 않고 씩씩하게 마주하려는 두 청춘이 무척 순수하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답다.

● 추천평_ 김성훈 씩씩하게 자신을 마주하고 자각하는 용기 ★★★ / 송경원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 / 이주현 소설 쓰듯 찍은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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