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이월> 김중현 감독 - 세상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마음으로…
2019-06-07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경제적 곤궁은 삶을 비참하게 한다. 데뷔작 <가시>(2011)를 통해 삶에 가시처럼 박힌 가난과 그로 인해 단절된 어머니와의 관계를 그려낸 김중현 감독은 <이월>에서도 가난한 고시생을 통해 관심사를 이어간다. 민경(조민경)은 만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쓴 채 쫓겨난다. 간간이 진규(이주원)와 섹스를 하고 받아 모은 돈이 그의 전부다. 민경은 과거 자신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친구 여진(김성령)의 시골집과 아들 성훈과 단둘이 사는 진규의 집을 전전하지만, 마음 둘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월>이 개봉한 지 넉달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난 김중현 감독은 “내 가난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라며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는 민경을 그려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개봉한 지 한참 지났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

=<배심원들>을 제작한 반짝반짝영화사에서 신작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월>이 극장에서 내린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쏟은 에너지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탈 때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라, 자전거를 타면서 시나리오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이월>을 준비할 때도 자전거를 탔나.

=많이 탔다. 특정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할까, 어떻게 풀어나갈까 같은 작품의 방향과 정서들을 정리했다.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건 ‘가난’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특정 세대나 계급 문제가 아닌 내 가난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가난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디고, 또 극복하는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상황에 따라 감정이 위축되기도 하지 않나. 그를 둘러싼 다양한 감정들이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지 않을까 싶었다.

-주인공인 고시생 민경은 감독 자신을 반영한 인물로 봐도 될까.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거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화가 나는 상황이 싫으면서 어떻게서든 넘어가고 싶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끝내 답을 찾지 못했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그 고민을 계속 했다.

-감독의 자의식을 반영한 캐릭터라면 민경을 남자가 아닌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모자 관계를 다룬 전작 <가시>를 찍고 난 뒤 다음 영화는 아버지와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남자인 내가 알지 못하는 부녀 관계는 무엇일까. 그런 질문들 던지면서 이야기를 쓰다보니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고, 자신을 엉망으로 만든 존재(아버지)가 사라진 상태에서 여자주인공은 현실을 헤쳐나가는 지금의 이야기가 되었다.

-민경은 김훈 작가의 소설 <영자> 주인공인 노량진 고시생 영자를 참조했다고 들었다.

=어떻게든 혹독한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영자의 의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조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영자는 어른이 바라보는 아이 같다는 인상도 받았고. <이월>을 쓰면서 스스로를 민경이 돼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다.

-민경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만두 가게에서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쫓겨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다소 위축돼 보이지만 쉽게 상처받지 않는 민경이 인상적이었다.

=민경을 어떻게 영화에 등장시켜 그려낼지 고민이 많았다. 관객이 그를 동정하거나 감상적으로 감정이입되는 걸 지양하고, 오히려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이야기 초반 10페이지 안에 관객이 ‘민경이 왜 이렇게 행동할까?’, ‘민경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을 어떻게 헤쳐나갈까?’라고 궁금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성공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보았다.

-민경은 어딜 가든 마음이 비좁아져 있고, 어깨가 많이 움츠러드는데.

=민경을 연기한 조민경 배우에게 가장 많이 얘기했던 게 자존감이었다. 민경이 위축돼 보이는 것은 가난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다.

-민경이 친구의 집을 쫓기듯 떠나다가 그 집 앞 웅덩이에 빠진 뒤 컨테이너에서 깨는 과정이 점프컷처럼 연출됐는데, 여유 없는 민경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기 위한 계산인가.

=현장에서 문명환 촬영감독과 비슷한 얘기를 나눴었다. 나는 인물에 거리를 둔 채 담담하게 찍으려고 했다. 배우에게도 민경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문했다. 이 영화는 민경의 로드무비이기도 해 민경이 산을 걸어가는 장면을 찍어두기도 했는데, 그 장면은 예고편에만 쓰였다. 그 이미지들이 관객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거나 감정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에 영화에는 빼버렸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할 순 없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활짝 웃는 민경의 얼굴은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듯한데.

=영화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고민 없는 민경의 얼굴이다. 이야기 내내 리얼하게 전개되다가 이 장면은 판타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누군가는 어둡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민경이 어떻게든 세상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마음으로 마무리지었다.

-영화를 더이상 극장에서만 보는 시대는 지났는데.

=나 또한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많지 않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개봉할 때만 극장에 간다. 그외의 영화는 넷플릭스나 IPTV를 통해 감상한다. 물론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영화적 체험과 다르지만 일반 관객은 그 차이를 잘 알까. 오히려 안방에서 편하게 보는 걸 선호하지 않을까. 창작자로서 최근 급변하는 플랫폼의 변화를 두고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

● Review_ 민경(조민경)은 가난한 고시생이다. 만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쫓겨난다. 공무원 시험 학원에서 강의료를 내지 않고 몰래 수업을 듣다가 쫓겨난다. 지하 월세방 입구엔 곧 방을 빼겠다는 쪽지가 붙어 있다. 집 대신 머물곤 하는 주인 없는 공사장 컨테이너에서 진규(이주원)와 섹스를 한 뒤 그로부터 받아 모은 돈이 민경에게는 전부다. 갈 곳 없는 그는 친구 여진(김성령)이 자살을 시도한 뒤 요양하고 있는 그의 시골집을 찾는다. 여진은 민경을 반갑게 맞아주지만, 여진이 가진 환경이 부러운 민경은 쫓기듯 그곳을 떠난다. 그러다가 진규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 성훈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혹독한 가난 때문에 갈 곳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민경의 모습이 절박하고 안타깝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삶을 헤쳐나간다. 카메라가 거리를 두고 민경을 담아내지만 잡초처럼 버티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울컥한다.

● 추천평_ 이용철 몇번 봐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머리가 아프다 ★★★☆ 이주현 모진 세상에서 악의로 연명하는 삶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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