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게>에 삽입된 시는 슬픈 사람의 독백처럼 들린다. <한강에게>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더 멀리 가고만 싶었던 날들’에 대한 영화다. 시간은 모든 것들을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거나 낡게 만든다. 그러나 강물은 끝없이 흘러가지만 한강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지속하는 것처럼, 삶이란 결국 강처럼 흘러가는 것들의 지속인지도 모른다. <한강에게>는 조용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한강을 보듯이 삶을 응시한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내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투영된 영화다. 국문과 다니던 때, 시를 많이 쓰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에 다니던 한강에 대해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처음 장편영화를 만들면 이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이야기다.
-혼자 감독, 촬영, 음향을 겸하면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다. 좋은 카메라로 찍었을 때보다 영상의 깊이감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음향도, 노이즈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연스럽고 인물과의 거리를 긍정하는 방식으로 녹음하고 싶다는 생각이어서 아쉽지 않았는데 사운드의 질 자체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영화에 즉흥 연기를 많이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에 다큐멘터리 요소를 결합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려고 시도를 한다. 배우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재하는 상황 속에 배우들이 들어가는 부분이 활용되는데 예를 들면 광화문에서 낭독하는 모습이나 연극 무대에서 연극하는 모습은 모두 실제 상황 속 배우들의 모습이다. 실재와 비실재가 만날 때의 느낌, 단순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실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큰 내용만 정하고 배우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의 대사를 해주길 바랐다.
-영향받은 감독이나 작품이 있나.
=즉흥적인 부분에서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는데, 스와 노부히로의 <퍼펙트 커플>(2005)과 필립 가렐의 <질투>(2013)를 배우들에게 보라고 부탁했다.
-카메라를 고정한 채 촬영했는데, 카메라로 인물을 따라가고 싶은 욕심은 없었나.
=영화에서 공간의 공기를 담아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물이 아니라 공간이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카메라를 고정한 채 촬영하는 것이 공간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방식이자 그곳의 공기와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방식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런 방식으로 인물을 다루는 데 더 매료되어 있는 것 같다.
-진아 역에 강진아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지.
=단편 작업을 하면서 강진아 배우에게 받았던 느낌이 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쓰기 시작할 때부터 강진아 배우에게 이야기했었다. 강진아 배우는 무표정의 감정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보이는 슬픔 같은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강진아 배우의 우울감과 해맑은 부분이 영화에서 같이 표현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아의 자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이유는.
=잠이 도피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진아가 원하든 원치 않든 침입해오는 기억과 일상이 섞여 있는 방식을 택하는데, 진아의 잠이 연결고리가 될 수 있겠더라.
-진아와 길우(강길우)의 사랑을 방해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한 근본적인 원인은 ‘권태’였다. 길우의 자격지심 또한 관계의 권태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권태에 대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를 신경 썼다. 자고 있는 길우를 보는 진아의 시선, 진아를 안고 있는 길우의 뒷모습에서 애틋함과 동시에 권태를 표현하려고 했다.
-‘304낭독회’로 오프닝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데 있어 현재의 시인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도 공동체의 아픔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시인이었고 지금도 현재의 젊은 시인들이 그러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시대의 상실을 담고 싶었다.
-슬픔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슬픔 앞에서 시의 역할은 무엇인가.
=슬픔을 긍정하는 게 필요하다. 잊어야 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슬픔에 예의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가장 늦게까지 울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시는 슬픔과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다. 슬픔을 끝까지 주시하고 있는 게 시인이며, 어떻게 보면 감정을 기억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는 생각도 든다.
-시적인 영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의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시에서 행간의 거리를 생각하듯이 영화에서 숏과 숏의 거리를 통해 의미를 파생시키는 방식이 시적인 영화가 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차기작 계획은.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돼서 <정말 먼 곳>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10월 중순부터 촬영을 시작할 것 같다. 서울에 살던 한 남자가 화천의 한 목장에 정착하면서, 목장 사람들과 유사가족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 Review_ 진아(강진아)의 오랜 연인 길우(강길우)는 사고를 당해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를 쓰는 진아는 묵묵히 강의를 하고, 출판사 직원과 친구를 만나며 자신의 삶을 이어가지만 때때로 엄습해오는 기억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했던 기억들,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줬던 기억들이 진아를 과거에 붙잡아놓는다. 죄책감과 슬픔에 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진아에게 사람들이 던지는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진아는 혼자 조용히 슬퍼하고, 카메라는 그런 진아를 묵묵히 바라본다. 카메라는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에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카메라가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 보이는 지점이다. 또한 영화는 고통의 기억들, 슬펐던 시간들을 긍정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 추천평_ 김성훈 흑백 화면을 가득 채우는 상실감의 공기 ★★★☆ / 김현수 괜찮지 않다고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 / 박지훈 “시간 앞에서 소멸하는 것들에게” ★★★☆ / 박평식 흐르지 않는 마음에게 ★★★ / 송형국 ‘죄 없는 죄책감’이라는 시대 정서 ★★★☆ / 이화정 극복되지 않을 슬픔을 어루만지는 손길. 세심한 가운데 힘이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