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극장에서>는 세명의 감독이 ‘극장’을 주제로 만든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영화다. 무미건조한 하루 속에 극장에서의 낯선 만남을 기대하는 인물을 따라가는 유지영 감독의 <극장쪽으로>, 관객과의 대화 현장을 포착하는 영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정가영 감독의 <극장에서 한 생각>, 사라진 시네필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그린 유쾌한 소동극, 김태진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이 바로 그것. 각자의 시선으로 극장을 그린 세 감독을 만났다.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극장’을 주제로 한 공모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극장을 소재로 한 영화를 극장에서 촬영하는 것, 영화에서 다루는 또 다른 영화 이야기. 영화를 찍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본 일 아닌가.
=유지영_ ‘극장’은 굉장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자 단어다. 극장을 악몽의 공간으로 재연해봐야겠다는 의도로 <나이트메어>(감독 웨스 크레이븐, 1984) 사운드를 삽입했다. 그리고 주인공이 길을 헤맨다는 면에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감독 아녜스 바르다, 1962)를 더했고. 이는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위한 장치이기도 했지만 이런 소재의 작품이 아니라면 구현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할 수 있는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봤다.
=정가영_ 영화가 끝나고 곧바로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는 게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관객은 관객대로 질문이 없을 수도 있고, 감독에게도 작품에 대한 모든 걸 말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극장 살인 사건>이라는 가상의 영화 상영 후 극장 안에서 일어나는 관객과의 대화에 대해 전면적으로 폭로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김태진_ 암전이 되고 영화를 보다가 밝아지는 화면에 주변 사람들을 살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게 나에게 ‘극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내 영화의 결말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으로 정해져 있었다. 극장을 ‘낙원’으로 그림으로써 낙원동에 있었던 서울아트시네마와 <우리들의 낙원>(감독 프랭크 카프라, 1938)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고, 영화 속 극장과 영화 속 영화의 배경이 됐다.
-세 작품 모두 세명의 배우가 극의 중심이 된다.
유지영_ 이 시나리오는 어떻게 보면 김예은이라는 배우에서부터 시작됐다. 극중 선미 캐릭터를 임의로 만들어낸다기보다 상황 속에 김예은이라는 사람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사실 김예은 배우가 아니었으면 아예 다른 시나리오가 나왔을 것이다.
정가영_ 오디션을 통해 이태경 배우를 만났는데, 영화에 나오는 긴 대사를 다 외워왔더라. 연기도 잘하지만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다. 이태경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고 가장 먼저 내 이름을 불러주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웃음)
김태진_ 박현영 배우와는 원래 알고 지냈고, 자주 얼굴을 보던 사이였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완성 후 시나리오를 읽어본 모든 사람이 박현영 배우를 추천했고, 나 역시 이에 동의했다.
-관객도 극장과 관련한 각자의 기억을 떠올렸을 테고, 상영 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 같다.
유지영_ 촬영한 공간이기도 하고 평소 애정이 깊은 오오극장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오극장에서 진행을 자주 했던 터라 내가 게스트로 자리에 앉으니 뭔가 어색하기도 하더라. “주인공이 길을 잃는 장면이 왜 그렇게 기냐”와 “거울은 왜 등장시켰냐”는 질문이 공통적으로 자주 나왔다. 관객도 극중 배우와 비슷한 영화적 체험을 했으면 싶어 의도적으로 길 잃는 장면을 길게 배치했다. 거울은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도구인데, 나 또한 거울을 사용해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사용했다.
정가영_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때 어려운 질문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담스러운 때가 있곤 했다. 사실 이런 과정이 힘들어서 만든 영화기도 하고. (웃음) 일 대 다수로 앉아 있으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부터 잘 모를 때가 있다.
김태진_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배우들만 게스트로 한 행사가 있었는데, 근처라서 관객과의 대화만 보러 갔다. 젊었을 때 프랭크 카프라를 좋아했다는 한 관객이 내 영화를 보고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는 감상을 전했다. 그 말 자체가 내게 참 뜻깊더라.
-각자의 작품 계획을 전해달라.
유지영_ <벌쓰>라는 시나리오로 전주시네마펀드 피칭에도 참여했고, 다른 아이템도 구상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에서 100인의 감독이 100초씩 영화를 만들고 옴니버스영화로 완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나도 그 100인 중 1인이다. (웃음)
정가영_ 장편 <하트>를 영화제에 출품한 상태고, CJ에서 <서른>이라는 로맨틱 코미디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있다.
김태진_ 단편영화를 찍게 될 기회가 생겨 여름에 촬영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추리물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현재는 그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있다.
● Review_ ‘극장’을 주제로 한 세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영화 <너와 극장에서>. 유지영 감독의 <극장쪽으로> 속 카메라는 건조하고 반복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선미(김예은)의 걸음을 따라간다. 어느 날, ‘6시 오오극장에서 만나요’라는 정체불명의 쪽지에, 그녀는 묘한 기대감을 안고 극장으로 향한다. 정가영 감독의 <극장에서 한 생각>은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가영(이태경)을 담는다. 예상에서 벗어난 질문을 던지는 관객으로 인해 극장의 공기에 균열이 생기는데, 그 순간을 포착하는 정가영 감독만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눈에 띈다. 생산직 반장 은정(박현영)은 출납 리스트를 가지고 사라진 직원 민철(오동민)을 찾아야만 한다. 연락이 닿지 않는 민철을 찾아나서는 여정의 끝에는 김태진 감독이 그리는 <우리들의 낙원>, 극장이 있다.
● 추천평_ 이나경 김예은의 얼굴, 이태경의 눈빛, 박현영의 표정 ★★★☆ / 이용철 하기는 극장에서 낭만을 찾는 시대는 아니니까 ★★★ / 이화정 극장에서 발견한 영화 같은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