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유리정원> 신수원 감독 - 환상동화를 현실로 구현하기
2019-03-22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사랑하는 사람도, 진행 중인 연구 성과도 모두 빼앗긴 채 자신만의 실험실인 숲의 ‘유리정원’으로 숨어든 과학도 재연(문근영). 그곳에서 재연이 비밀리에 진행 중인 ‘생체 실험’, 그리고 우연히 재연의 이상행동을 알게 되고 이를 관찰해 소설로 써나가는 소설가 지훈(김태훈). <유리정원>은 숲속에서 펼쳐지는 그로테스크하고 판타스틱한 드라마다. <명왕성>(2012), <마돈나>(2014)에서 자본주의사회의 병폐를 끝까지 파고들었던 신수원 감독은 미스터리한 판타지 장르를 통해 잘못된 선택으로 기이한 파국을 맞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장르는 달라졌지만 신수원 감독의 예리한 연출의 날은 리얼한 드라마와 쓰임새가 다르지 않다.

-나무로 변하는 인간, 동화에서나 볼 법한 설정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나.

=전작 <마돈나>에서 미나(권소현)가 코마 상태다. ‘식물인간’이라 말하는데 그 말에 관심이 가더라. ‘식물’과 ‘인간’으로 분리되고 다시 더하면 ‘나무인간’이 된다. <마돈나> 시나리오를 쓰면서 <유리정원>도 같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다. 초반 설정은 식물인간인 여성 간호사가 나무인간으로 바뀌는 거였다.

-영화에서 재연(문근영)은 변형세포를 연구하는 생물학도로 나온다.

=<마돈나>에서 미나의 사연을 알아가는 해림(서영희)이 간호조무사라 설정을 바꿨다. (웃음)

-적혈구와 엽록체를 결합하면 인간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은 믿기지 않는데 영화에서 구현된다. 실제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

=시나리오 쓰면서 연구자를 여럿 만나서 이 가설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 물어봤다. 엽록소에서 인공혈액을 발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식물과 동물로 각각 종이 달라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생물을 연구하는 한 친구 말이, 불가능은 없다고 하더라. 과학자들은 100년 후에 입증될 수도 있는 일을 가설을 세우고 입증해 나가는 일을 한다고. ‘녹혈구’라는 영화 속 명칭도 그 친구가 아이디어를 줬다. 그 친구가 “영화잖아”라고 하는데, 그 말에 힘을 얻었다.

-그러고 보면 단편 <순환선>(2012)에서는 오히려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를 풀어내는 걸 즐겼다.

=이번엔 실현 가능한 정도의 사이즈로 만들면 제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썼다. (웃음) 영화에 등장하는 나무인간 정도는 작은 사이즈에서도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영화 후반에 공개되는 나무인간의 모습을 구현하는 건 사이즈를 떠나 어려운 과제였다.

=엄청난 숙제였다. 머릿속에서 상상할 때와 달리 실제로 화면에 구현하려니 무척 힘들었다. 미술, 특수분장, CG 등 여러 팀의 노력이 더해졌다. 내 작품 가운데 가장 예산을 많이 쓴 영화인데도, 이 장면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무인간에게 나오는 나뭇잎 같은 부분이 보다 정교하게 표현되려면 훨씬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겠더라. 한정된 상황에서 아이디어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재연은 실험실 동료와 교수에게 자신의 연구 성과를 빼앗기고, 소설가 지훈은 그녀의 삶을 몰래 소설로 옮기려 한다.

=창작자에게 ‘표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창작 활동은 타인의 인생을 훔치는 작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인데, 그걸 소재로 창작물을 만든다. 나 역시 <마돈나>를 만들 때 카페에서 한 젊은 여성 노숙자를 보고 모티브를 얻었다. 그 여성은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데 혹시 내가 지훈처럼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본 건 아닌지. 어디까지가 창작인지, 그런 딜레마에 늘 봉착한다.

-문근영은 재연이 가진 내면의 고통, 그리고 숲의 유리정원에서 보여주는 순수함을 동시에 구현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 시나리오는 배우가 납득하지 않으면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문근영씨가 시나리오를 보고 흥미를 보이더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놀랐는데, 서브 텍스트로 써놓은 부분까지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어릴 때 산에 많이 갔고, 산에서 엄마가 나무한테 노래를 불러주라고 했다고 하더라. 재연과 나무 사이의 교감이 (문)근영씨한테 친근했던 것 같다.

-재연이 스스로 세상과 단절한 채 숨어든 자신만의 연구실 유리정원은 실제로 존재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스터리한 정서를 띠고 힐링의 공간 역할을 해야 했다. 비주얼적으로 영화의 장르가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구현해야 했다.

=유리정원 세트는 전주에 만들었고, 숲 장면은 창녕 대봉 늪에서 찍었다. 숲을 아주 많이 헌팅했다. 개천에 다리 하나 걸쳐져 있는 오지인데, 자칫 개발되면 홍수가 날 수 있다고 주민들이 촬영을 반대했다. 늪이라 비가 오면 금방 잠겨버리기도 했고. 유리정원은 전면 유리로 비현실적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숲속의 예쁜 정원 같은 이미지보다 도시에서 쫓겨난 과학도가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는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현재 차기작을 진행 중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젊은이의 양지>를 진행 중이다. 곧 촬영에 들어간다.

● Review_ 과학도 재연(문근영)은 사면초가다. 믿고 의지하던 정 교수(서태화)는 자신을 이용했고, 연구 성과마저 동료가 가로챈다. 재연은 도심의 차가운 연구실을 떠나 숲속, 숨겨진 자신만의 실험실 ‘유리정원’으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그녀는 비밀리에 적혈구와 엽록체를 결합한 나무인간 실험을 진행한다. 소설가 지훈(김태훈)은 우연히 재연의 기이한 실험에 대해 알게 되고, 그를 엿보기 시작한다. 수년째 소설을 못쓰고 있는 그는, 재연의 사연을 작품의 소재로 이용하려 한다. 재연이 하는 실험의 정체는 어떤 모습일까. <유리정원>은 그로테스크한 한편의 동화를 미스터리와 판타지 장르의 형식 안에서 써나간다. 지훈의 호기심을 바탕으로 기술되지만 재연은 마냥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상상력을 전달해줄 CG 구현에 아쉬움이 남지만 가장 현실적인 바탕에서 지극히 판타지적인 상상력의 최대치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유리정원>의 상상력은 반길 만하다.

● 추천평_ 김현수 착하지만 지독한 파괴 ★★★☆ / 이용철 갈망하라, 비록 복원할 수 없을지라도 ★★★ / 이화정 자연 정화적인 복수, 그로테스크한 통쾌 ★★★ / 황진미 <채식주의자>와 <미져리>와 TTL ‘파란 피’ 광고를 뒤섞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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