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히든픽처스] <히치하이크> 정희재 감독,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닿아 있다는 느낌”
2019-06-14
글 : 이나경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누구에게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포기를 강요받는 시기가 있다. 정희재 감독은 이러한 순간에 착안하여 펜을 들었다. “기대하는 것보다 하나씩 포기하는 게 익숙했던 나와 주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로 장편 데뷔작 <히치하이크>를 소개한다. 영화는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기대하기 조차 힘든 여건에 놓인 16살 정애(노정의)를 따라가며, 지속적으로 포기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2014년에 초고를 썼다고 들었다. 정애의 여정을 영화화하게 된 과정을 조금 더 알려달라.

=그때가 주변 지인들이 무엇부터 포기할지, 얼마큼이나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던 시기였다. 나는 영화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지금이 포기하기 좋은 시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자연스레 그런 인물을 떠올리게 되었다. 극을 이끄는 인물이 포기하라는 이야기만 주야장천 듣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길을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과정에 접근하며 만든 이야기다.

-정애라는 중심 인물을 따라가는 로드무비이자 정애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특히 정애의 감정 표현이 중요한 만큼 클로즈업숏도 많다. 촬영 시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는지 궁금하다.

=물론 클로즈업숏으로 정애의 표정을 담으며 감정을 표현한 신이 많지만 상황에 따라 밸런스를 맞춰가며 적절하게 숏을 섞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노정의 배우와 대화를 많이 했다. 초반의 시나리오에는 정애가 눈물 흘리는 장면이 많았다. 노정의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정애가 가진 슬픈 감정은 눈물을 흘리는 순간 오히려 더 표현이 안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 또한 여러 가지로 고민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노정의 배우가 제안한 대로 구성한 것이 영화가 더 좋게 나온 이유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카메라는 노정의 배우가 준비해온 모습 그대로를 따라가는 데 집중했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만류하는 주변인들의 말에도 정애는 엄마 찾는 걸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엄마를 마주하게 된 순간, 도망치듯 뛰쳐나온다.

=접근하고 구상하기 가장 어려웠던 신이다. 음악을 활용할 때도 이 장면이 가장 어려웠다.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기대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정애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렇게 찾았던 엄마는 병상에 누워서 의식도 없다. 정애에게는 일말의 기대감이 모두 무너진 순간 아닌가. 콘티 작업을 하다가 오랜 병원 생활의 결과로 창백하고 주삿바늘이 많은 엄마의 손을 본다면 정애가 충격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손을 강조하며 그 장면을 풀어갔다.

-밥상 앞에서 머뭇거리는 정애를 보고 “나도 밥을 먹지 않았다”며 먼저 밥을 먹는 현웅(박희순)의 모습, 전학을 앞두고 효정(김보윤)과 정애가 나누던 대화와 두 사람의 포옹 등 영화의 따뜻한 잔상이 많이 남는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신이 있는가.

=영호(김학선)가 등장하는 첫 장면, 오토바이 뒤에 타고선 아빠에게 “배고프다”고 말하는 정애의 첫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장면이 좋은 이유는 말씀하신 전학을 앞둔 효정과 정애가 나눈 대화 신과 접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효정은 정애에게 현웅을 찾아가서 현웅의 딸로 살아가라고 제안한다. 효정은 새아빠가 생기게 될 테니 정애가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들어가길 바란다. 이를 들은 정애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배고프다”고 답하고. 그때 정애가 죽은 아빠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극을 끌어가는 노정의 배우뿐 아니라 김보윤(영화를 찍을 당시에 김고은으로 활동했으나, 최근 활동명을 바꿨다.-편집자), 박희순 배우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세 배우를 만난 과정을 알려달라.

=처음에 짧게 노정의 배우를 만났을 때, 연약한 이미지에 단편 작업 경험도 전무해서 우리 현장을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만날수록 노정의 배우가 가진 엄청난 책임감에 놀랐다. 김보윤 배우가 맡은 캐릭터 효정은 영화에 깔린 무거운 톤을 상쇄해주는 기운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실제로도 김보윤 배우와 함께할 때 웃을 일이 많았다. 밝은 에너지에 더해 노정의 배우와의 시너지 효과도 좋아서 캐스팅 이후 점점 비중이 늘어난 경우다. 박희순 배우는 10년쯤 전, 사극 현장에서 처음 만났다. 으레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다른 배우와 스탭을 잘 챙기는 세심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우연히 박희순 배우의 매니저를 만나 시나리오를 전달했고, 아이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너무 따뜻해서 좋았다고 연락을 주셨다.

-국내 영화제 상영과 개봉 사이에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제14회 유라시아국제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유라시아국제영화제가 해외에서는 프리미어 상영이라 직접 갔었고, 제5회 나라국제영화제와 제13회파리한국영화제 현장에도 있었다. 올해 2월까지는 해외 세일즈사가 없어서 영화제측에 직접 메일을 보내고 DCP도 제출했다. 고등학생 때 이후 가장 영어를 많이 쓴 순간이 아닌가 싶고. (웃음) 유라시아국제영화제에서는 조식을 먹다가 다른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영화를 틀고 싶다는 의사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한 곡선으로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고 좋았다고 하더라. 성별, 나이, 국적 등을 떠나 사적인 경험에 의거해서 영화의 감상평을 말해주는 관객이 많았다.

-앞으로 그려나갈 이야기도 궁금하다.

=개봉을 기다리는 동안에 쓴 시나리오를 올해 2월쯤 일단락 지었다. 중년 여성인 청부살인업자가 주인공이다. 입양 보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일을 그만두려고 하지만 그 과정이 어려워지며 겪는 이야기다. 지금은 좀 단순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새로운 작품 초고를 쓰고 있다.

● Review_ 비 내리는 판자촌, 물에 젖은 ‘연고자 확인 의뢰서’에서 엄마의 이름을 확인하는 정애(노정의)의 무기력하고 슬픈 얼굴로 영화가 시작된다. 간암에 걸린 아빠, 집을 나간 언니, 소식을 알 수 없는 엄마까지. 16살 정애가 짊어지기에는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 아빠를 기억할 단서라고는 어릴 적 사진과 이름밖에 없는 단짝 친구 효정(김보윤)과 함께 정애의 엄마 찾기, 효정의 아빠 찾기가 시작되지만 세상은 이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후 “엄마 찾기를 포기하라”는 효정을 두고 홀로 여정을 계속하는 정애는 효정의 아빠와 동명인 현웅(박희순)과 교류하며 따뜻함과 가족의 정을 느낀다. 영화가 흘러갈수록 정애가 붙잡고 있던 희망의 끈, 기대하고 있는 일말의 여지는 자꾸만 사라진다. 그럼에도 정애는 포기하지 않는다. 클로즈업이 유독 많은 영화 속에서 내내 정애의 표정을 복기하게 된다.

● 추천평_ 이나경 유효하지 않은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 / 이용철 그 아빠, 그녀 엄마, 아프게 불러보는 이름 ★★★ / 이주현 절망하며 포기하는 대신 희망하며 포기하기 ★★★ / 이화정 결핍의 시공간 속, 어리고 여린 진심을 꿰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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