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찍은 사람이 보인다. 김종우 감독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 <홈>을 쏙 빼닮았다. 솔직하고 올곧고 선한 시선. 영화 <홈>이 김종우 감독을 투명하게 반영한 영화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까.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홈>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주고 마음을 나누며 가족이 되는 이야기다. 자극적인 상황으로 또 한번 인물을 몰아붙이는가 싶었던 영화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인물들의 선의를 최대한 이해하고 배려한다. 동시에 예민하고 여린 성장기 소년의 상처를 쓰다듬는 일도 잊지 않는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후에 개봉을 하고 일반 상영도 했다. 영화제에서는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는데, 그사이 관객도 직접 만나고 많은 경험을 했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다.
=이제야 하나의 언덕을 넘은 것 같다. 개봉 전에는 이렇게 부끄러운 영화로 관객을 마주해도 괜찮을지 두려움이 컸다. 관객과의 대화를 꽤 했는데 부족하지만 예쁘게 봐주신 분도 있고 뼈아픈 지적을 해주신 분도 있다. 매번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관객 한명 한명을 만난 기억들이 행복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겸손이 과하다. 비극을 착취하는 영화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홈>은 남다른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소재만 놓고 보면 이른바 막장 드라마인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닥 나쁜 사람은 없다.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준호(이효제)의 친아버지가 나쁜 사람인데 미화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을 때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아빠가 다른 형제 등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봤던 상황 속에 던져지긴 하지만 그걸 자극적인 방향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준호의 시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기로 한 것은 그런 이유도 컸다. 처음 시놉시스는 아주 센 이야기였고 엔딩도 훨씬 셌다. 그런데 쓰다 보니 도저히 인물을 그렇게 몰고 갈 수 없었다. 아토ATO의 김순모 PD와 회의를 거친 후 그렇다면 아예 착한 이야기로 가보자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렇게 각자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인물 한명 한명을 이해해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있다는 설정은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다.
=출발은 극한상황에 몰린 소년의 선택과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 가족을 가지고 싶어 하는 소년 준호와 이웃집 소녀 지영(김하나)만 있었던 이야기였는데, 영화의 진정성을 고민하다 보니 나의 이야기가 녹아들고 어느덧 성호(임태풍)라는 인물이 만들어졌다. 나도 성호처럼 8살 때 형과 헤어졌고, 형은 그때부터 혼자 살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어머니가 우리 가족 관계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때 형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어쩌면 <홈>은 그 시절 내가 몰랐던 형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한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홈>은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되묻는 영화다. 제목이 왜 영어, 그것도 소문자로 ‘home’인지 궁금하다.
=가족이란 뭘까. 영화를 찍는 내내 고민한 질문이다. 나는 형과 떨어져 살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가족이 아닌 건 아니다. 내 마음속에서 형은 언제나 형이었고 지금도 누구보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애정을 품고 지낸다.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는 가운데 가족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다기보다는 여러 마음의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시나리오상 가제는 ‘나의 새로운 가족’이었다. 최종적으로 ‘홈’이란 제목은 주인공이 살고 싶은 작은 집을 의미한다. 하우스(House)보다는 홈(Home).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 함께하는 작고 소박한 연대랄까. 기왕이면 대문자보다 소문자가 주는 소박함을 살리고 싶었다.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웃음) 그런 감성이 중요한 영화다.
-왕따 당하던 외로운 소년 준호는 마지막에 “같이 살고 싶어요”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낸다. 비록 함께 살지 못하고 헤어져야 하는 잔인한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지만 준호의 변화는 성장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엔 그 대사에 다다르는 이야기다. 어쩌면 “같이 살고 싶어요”라는 대사에서 출발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준호 역을 맡은 이효제와도 어떤 톤으로 대사를 표현할지 다양하게 의논했다. 현장에서는 배우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맡기고 기다렸다. 극적인 계산보다 끝내 그 대사를 내뱉는 배우의 호흡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효제는 연기를 지도해야 하는 아역배우라기 보단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동료에 가까웠다.
-차기작을 준비하면서도 다른 영화의 조감독이나 스탭으로 참여한다고 들었다.
=현장에는 작은 거라도 항상 배울 것이 있다. 놀면 뭐 하나. 간혹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게 더 걱정이다. (웃음) 최근에는 아이유가 주연을 맡은 전고운 감독의 단편 <키스가 죄> 현장에서 조감독을 했다. 장편을 하나 찍고 나서 조감독을 해보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 즐거웠고 많이 배웠다. 앞으로는 좀더 유쾌하고 밝은 방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홈>을 끝내고 문득 의심이 들었다. 현실의 어두운 면을 관성적으로 그리는 데 익숙해진 게 아닌가? 나 역시 영화를 보고 행복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고 싶은데 왜 만들 때는 그러지 못하나. <홈>을 보신 분들이 남긴 반응 중 가장 기쁘고 힘이 된 건 “영화를 보고 가족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는 댓글이었다. 앞으로는 좀더 폭넓고 편안하게 관객에게 다가가고 싶다.
● Review_ 준호(이효제)는 따돌림에 시달리는 외로운 중학생이다. 엄마는 항상 바쁘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 성호(임태풍)는 너무 어리다. 어느 날 준호의 엄마와 성호의 새엄마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의지할 곳 없는 준호는 성호의 친아빠인 원재(허준석)의 집에 잠시 몸을 의탁한다. 원재는 준호를 살뜰히 챙기지만 잠시 돌봐주는 것과 책임을 지는 건 다른 문제다. 준호는 동생 성호, 원재의 딸 지영과 함께 지내며 잊고 있던 가족의 따스함을 느끼지만 병원에 있던 엄마가 사망하면서 이내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소 자극적인 설정과 달리 <홈>은 소년의 불행을 구경거리로 삼지 않는다. 극적인 장치는 최대한 줄이고 어른 미만 아이 이상의 소년이 겪는 혼란을 묵묵히 바라보는 데 집중한다. 소년에게 닥친 복잡한 상황을 통해 가족의 의미와 관계의 어려움을 되짚는 작품. 진지하고 예민한 시선이 돋보인다.
● 추천평_ 송형국 유아와 소년과 성인 사이에서 취한 균형감각에 한표 ★★★ / 이화정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 집, 혈연 ★★★ / 임수연 핏줄로도, 친절함으로도, 보장되지 않는 관계의 어려움 ★★★